人生天地間
인생천지간
百骸九竅都相似
백해구규도상사
或貧或富或貴賤
혹빈혹부혹귀천
或姸或醜緣何事
혹연혹추연하사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개의 구멍이
달린 것은 모두가 서로 비슷한데
혹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혹 어떤 사람은 부자이며
혹 어떤 사람은 귀하고 천하며
혹 어떤 사람은 잘 생기고
혹 어떤 사람은 못생긴 것은
어떤 일을 인연으로 해서인가.
고려 진각 국사께서 어린 시절에 지은 고분가(孤憤歌)를 다시 생각해본다. 외로울 고(孤)는 우주의 진리가 몹시도 궁금한데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데서 오는 절대 고독의 외로움이다. 절대고독의 외로움의 발꿈치라도 구경해본 사람은 그 고독의 씁쓰레함을 조금은 짐작할 수도 있다. 씁쓰레함의 끝은 또 결코 씁쓸하지 않은 절묘한 맛이 있기도 하다.
분할 분(憤)은 아무도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내 스스로라도 알아내야 되겠다고 하는 대분심이자 대분발심이다. 길을 가다가 가시덩굴이 있는 구역을 만났을 때 가시가 무서워서 조심조심 조바심을 치다보면 오히려 여기저기 가시에 찔려서 쓰리고 아픈 곳이 생긴다. 그대 가시밭길이로구나 하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으면 처음에 한두 개의 가시가 찌르려고 덤벼보다가 오히려 가시밭길 스스로 평온해진다.
진각 국사는 어린 나이지만 절대고독의 외로움에 조물주를 물고 늘어진다.
曾聞造物本無私
증문조물본무사
乃今知其虛語耳
내금지기허어이
일찍이 듣기를 조물주는 본래
사심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소리가 헛소리였을 뿐임을 알겠구나.
조물주가 사심 없이 공평하게 만물을 만들었다면 서로 비슷하거나 해야 되는데 둘러보니 불공평이 진각국사의 어린 눈에도 마구 들어온다.
虎有爪兮不得翅
호유조혜부득시
牛有角兮不得齒
우유각혜부득치
蚊有何功
문맹유하공
旣翅而又嘴
기시이우취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은
가지고 있지만
날개를 얻지 못했고
소는 들이받는 뿔은 있지만
날카로운 이빨은 얻지 못했는데
모기는 무슨 공덕이 있길래
이미 날개도 달려있는데
사람을 톡 쏘아서 물어대는
주둥이도 가졌는가.
소도 치아를 가지고 있긴 하다. 그러나 초식 동물이어서 풀을 뜯어먹는 정도이지 맹수의 이빨처럼 질기고 딱딱한 것을 깨트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치아는 아니다. 그런데 호랑이도 가지지 못한 뿔을 머리에 장착하고 있다.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발톱은 또 없다.
진각 국사의 어린 가슴 속에 도대체 왜 이런 차별이 생겨있는가 하는 의문이 가득차 오른다. 새들의 다리도 불만이다.
鶴脛長兮鳧脛短
학경장혜부경단
鳥足二兮獸足四
조족이혜수족사
학의 다리는 기다란데
오리의 다리는 짤막하고
새의 다리는 두 개인데
뛰어다니는 짐승들의
다리는 네 개이다.
같은 짐승의 몸을 받았는데 어떤 짐승은 다리가 길거나 목이 길거나 한데 어떤 짐승은 다리가 짧기도 하고 목이 짧기도 하다. 거기다가 다리가 두 개 달린 짐승이 있는가 하면 네 다리로 뛰어 다니는 짐승도 있다. 물속에 사는 짐승은 또 어떤가.
魚巧於水拙於陸
어교어수졸어륙
獺能於陸又能水
달능어륙우능수
물고기는 물에서는 솜씨가 좋지만
육지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데
수달은 물에서도 능하고
육지에서도 능하구나.
가는 겨울이 아쉬운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 창밖으로 함박눈이 한없이 흩날리고 있다. 어떤 날은 눈 내리고 어떤 날은 바람 불고 어떤 날은 비 내린다.
눈과 비가 함께 내리고 바람까지 벗이 되어 불어오는 날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 벌써 봄기운이 가득하다. 이미 한겨울의 매서운 눈이 아닌 것이다.
진각 국사의 생각은 짐승의 수명까지 살펴본다.
龍蛇龜鶴千年壽
용사구학천년수
朝生暮當死
부유조생모당사
용과 뱀과 거북이와 학은
천년의 수명을 누리는데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났다가
저녁때면 죽어야 된다.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가만히 놔두면 다 죽는다고 설법하는 스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천년의 수명과 달랑 하루라는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한없이 불공평하지만 한번은 죽는다는 점에서는 또 한 없이 공평하기만 하다.
俱生一世中
구생일세중
胡乃千般萬般異
호내천반만반이
똑같이 한세상 가운데 태어났는데
어찌하여 천 갈래 만 갈래로
차이가 나는가.
그러한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이미 그렇게 되어있다. 급기야 하늘과 땅에게 질문을 던진다.
上以問於天
상이문어천
下以難於地
하이난어지
天地默不言
천지묵불언
與誰論此理
여수논차리
위로는 하늘에게 물어보고
아래로는 땅에게 따져봐도
하늘과 땅이 침묵을 지키면서
말을 하지 않으니
누구와 함께 이 이치를 토론해보겠는가.
胸中積孤憤
흉중적고분
日長月長銷骨髓
일장월장소골수
가슴 속에 외롭고 분한 마음이 쌓이면서
하루가고 한 달 감에
골수가 녹아내리는 구나.
요즘의 어린이들은 컴퓨터게임에서 강적을 어떻게 격파할 수 있을까 밤을 훌쩍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음 속 강적도 어느날 후련하게 물리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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