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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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典) 속 명구(名句) 여행] 21 육조 스님 - 금강경 오가해 서문 중에서




 연꽃은 위대하다. 조계사 마당을 저토록 아름다운 연꽃정토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저절로 청량한 기운이 스며온다. 연꽃 사이에 있는 공간도 그냥 공간이 아니다. 이쪽 연꽃과 저쪽 연꽃은 보이지 않게 연결시켜주는 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몸에도 혈관과 영양분 섭취의 길뿐만 아니라 혈관이 흐르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그 길은 뼈마디마디 속의 깊은 골수까지도 모세혈관보다 더 미세하게 뻗어있기도 하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끝까지 입체적으로 뻗어있기도 하다.

 육조스님은 금강경 오가해 서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何名爲經 하명위경
經者徑也 경자경야
是成佛之道路 시성불지도로

무엇을 경이라고 하는가
경은 지름길이니
이것은 성불로 가는
고속도로이니라.


 경전을 읽노라면 마음속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속도로가 뻥뻥 뚫리는 느낌이 온다. 은하수 저 너머로 고가도로가 되어 뚫리기도 하고 행성과 행성을 연결시키는 무지개 다리길이 되어 뚫리기도 한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가 여느날 같지 않고 이상하게 막힌다 싶을 때 한참 가다보면 길옆에 자동차 하나가 차선을 막아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뭐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밤에 곡차를 흠뻑 즐기다가 대충 길옆에 차를 세워놓고 수면삼매에 들어간 한 사람 때문에 참 여러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가지가지 스팀을 피워올린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이다. 차선 하나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소통되지 않으면 마음이 그냥 한도 끝도 없이 불편해지는 수가 있다.

출근길의 차선은 다른 사람이 막아서는 것이지만 마음고속도로의 차선은 순전히 제 스스로 막아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막아놓고 있는 것을 깜깜 잊어버리고 남을 탓하게 되기가 천중 구백구십구이다.



凡人 欲臻斯路 범인 욕지사로
應內修般若行 응내수반야행
以至究竟 이지구경

일반 사람이 이 길에
이르고자 한다면
반드시 안으로 반야행을 닦아야만
구경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안으로 흘러드는 반야의 꿀물이 호흡의 숨결따라 손가락 끝까지 흐르고 발가락 끝까지 뻗어 나가주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마음의 고속도로가 중간에 교통정체를 일으키고 있으면 그 좋은 반야의 꿀물이 역류하면서 온갖 짜증과 불쾌함의 탁수로 변해 버린다.

자기 스스로 마음의 고속도로를 막아놓고는 저 아들 때문에 내가 못살겠다는 마음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다. 탁수의 분수는 그 아들의 아버지를 향해 뿜어지기도 하고 잘 지내던 도반의 스카프를 흠뻑 적시기도 한다.

명심보감에서도 “피를 머금어서 상대방에게 뿜어내면 먼저 그 입이 더러워진다.”고 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지금 생각해보면 가지가지 구업으로 내 옷에, 내 골수에, 내 모세혈관에 탁수로 변해버린 꿀물을 많이도 뿜어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육조 스님의 서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如或但能誦說 여혹단능송설
心不依行 심불의행
自心卽無經 자심즉무경
實見實行 실견실행
自心卽有經 자심즉유경
故此經 如來 고차경 여래
號爲金剛般若波羅密經也 호위금강반야바라밀경야

만약에 단지 외우거나 말하기만 하고
마음으로 이 경을 의지해서
행하지 않으면
자기의 마음에 경전의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은 것이고
실제로 보고 실제로 행한다면
자기의 마음에 경전의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릴 것이니
이 때문에 여래께서 이름하여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한 것이다.



오세암을 참배하러 가노라면 깔딱고개가 나타난다. 그 고개를 오르는 동안 숨이 턱에 차기도 하고 시야가 흐려졌다 밝아졌다 하기도 하고 등줄기에 땀이 시냇물을 이루는 것 같기도 하지만 깔딱고개 위에 올라서는 찰나 상쾌하게 밀려오는 청량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경전읽기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어떤 경전을 읽든 저 오세암이나 봉정암의 깔딱고개를 오르는 절박함으로 읽어야만 그 경전이 안내하는 고속도로 표지판이 나온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고 그런 마음으로 나도 읽고 그렇게 읽으시라고 안내하고 있다. 문제는 머리로 조금 이해되거나 경전의 깔딱고개에 이르면 휴식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이다.

강물이나 시냇물의 흐름을 막고 있는 모래를 긁어내서 물이 흐르게 하면 며칠은 잘 흘러주지만 이내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래가 다시 물길을 막아버린다. 억겁동안 우리네 번뇌습기의 모래가 잠시 뚫린 듯한 물길이나 도로를 막아 버리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시에도 내부순환도로와 외부순환도로가 있는 것처럼 내 몸에도, 내 마음에도 내부순환도로와 외부순환도로가 있다. 외부순환도로는 혈관이다. 혈관이 내부순환도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혈관보다 훨씬 깊숙이 나있는 내부순환도로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혈관은 한참 밖을 돌고 있는 외부순환도로인 것이다. 혈관을 따라서 피가 흐른다. 내부순환도로를 통해서는 온갖 번뇌도 흐르고 사랑도 흐르고 미움도 흐르고 지혜도 흘러가고 있다.

<금강경>이나 <법화경>이나 부처님의 경전을 지극한 마음으로 읽으면 이 몸과 마음의 내부순환도로를 따라 흐르고 있는 지혜의 세포가 꿈틀꿈틀 깨어난다.

유식에서 말하는 <종자생현행>의 대긍정 기능이 발휘된다. 지혜의 세포 몇 개라도 깨어나기만 하면 이웃집에서 쿨쿨 자고 있는 지혜와 자비의 세포를 부드럽게 깨우기 시작한다. 부드럽게 깨우는데도 격렬하게 깨어나는 세포도 있다. 어리석음의 세포가 따로 있고 지혜의 세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지혜의 세포가 기절해있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알콜 속에 담겨 있거나 하면 그것을 어리석음의 세포라고 부를 뿐이다.

시골마을 어두컴컴한 밤에 한 마리의 닭이 울면 온동네 닭들이 거대한 합창으로 화답하듯 어리석음이 퍼뜩퍼뜩 깨어난다. 그렇게 내부순환도로가 소통되기 시작하면 외부순환도로인 혈관으로 지혜로움이 흘러들어간다. 이제 혈관의 교통정체가 풀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혈관고속도로가 소통되면 골수순환도로와 내부장기 순환도로도 덩달아서 원활하게 소통된다. 애써 교통방송을 듣지 않아도 큰 불편이 없어지게 된다. 드디어 손톱 발톱도로까지 흘러간다.

손목과 발목이 튼튼해진다. 튼튼해진 발목으로 조계사 앞마당 연꽃동산을 걸어보자. 연꽃이 더욱 싱싱해질 것이다. 싱싱해진 연꽃의 기운이 다시 나의 발목을 더 시원하게 해준다. 우리 모두의 발걸음이 가뿐해지고 사뿐해질 것이다.






· 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 출처: 미디어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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