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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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典) 속 명구(名句) 여행] 20 육조 스님 - 금강경오가해 서문 중에서




 금강경오가해를 펼치면 맨 먼저 육조스님의 서문이 나온다. 전체 구절을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해보노라면 육조 스님의 빛나는 통찰력의 에너지가 읽는 이의 마음을 마치 굳어있는 꿀이 녹아 흐르듯 녹게 해준다.

 뭐 그렇게 강한 어조로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너무 큰 목소리로 말했구나 하는 생각도 저절로 일어난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먼저 내린 사람이 자동차 문을 ‘쾅’하고 자동차 전체가 흔들리도록 닫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이 화가 난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세게 문을 닫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 불만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식당에 식사하러 갔는데 밑반찬을 가져온 종업원이 마치 접시를 던지듯 식탁에 닿는 소리가 들리도록 내려놓고 후다닥 왔다갔다 하는 것은 뭐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 사람의 팔 시스템과 손목시스템과 손가락시스템이 굳어있기 때문이다.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곧은 상태가 그런 팔 동작과 손목 동작과 손가락 동작으로 나타난 것이다.

 부드럽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강한 어조로 목소리가 불쑥 나가는 것은 내 마음 어딘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체 덩어리로 굳어있기 때문이다. 입체 덩어리로 굳어있는 마음이 눈으로 가면 부드럽게 웃어도 상대방은 얼핏 화난 표정으로 읽기도 한다. 굳어 있는 마음 덩어리가 안면근육으로 가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표정한 사람 비슷하게 되어 버린다. 위장으로 가면 소화불량 증세로 나타날 것이다. 손목이나 발목으로 가면 골프공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방향하고는 다르게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에서 유명하고 실력 있는 선수가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 선수가 공을 차는 발목이나 공을 차는 순간에 땅을 딛고 있는 발목을 조금만 유심히 보면 부상 때문에 몇 군데가 덩어리로 굳어있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마음으로는 분명 골키퍼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차는데 발목의 굳은 덩어리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공을 차도록 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골대 자체를 벗어나 관중석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방향조절 뿐만 아니라 차는 순간의 힘 조절까지도 내 마음과 다르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그만 미안하다는 말은 나가지 않고 친구 속을 더 깊이 확 긁어대는 말이 나갈 때가 한 번 씩 있는 것은 굳어있는 내 마음 속의 얼음 덩어리가 아직 내가 생각하는 만큼 녹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육조 스님의 금강경 서문을 읽노라면 금강반야바라밀은 일체 중생의 번뇌를 녹여주는 금강반야의 꿀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라밀의 밀자가 꿀밀자[蜜]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범어를 한문으로 옮길 때 혹시 꿀물을 생각하고 하고 많은 밀자 중에 꿀밀자를 쓴 것은 아닐까 하고 꿀물이 들으면 웃을 생각도 잠시 해본다.

 육조 스님의 금강경 서문 한 구절을 읽어본다.


何名波羅蜜 하명바라밀
唐言 到彼岸 당언 도피안
離生滅義 이생멸의


무엇을 바라밀이라고 하는가
당나라 말인 한문으로는
도피안이라고 하니
생멸의 세계를 멀리 떠나다는 뜻이다.


 부드러운 물결처럼 고운 비단결처럼 덩어리를 녹여주는 꿀물처럼 마음과 몸을 써야 가 닿을 수 있는 곳이 저 언덕 생멸의 세계를 벗어나 있는 피안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렇게 쓰지 못한 적이 많았던 나 자신의 마음씀을 깊이 참회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근육이나 인대와 관절뿐만 아니라 뼈마디 속의 골수 알갱이까지 단단한 덩어리가 많이 있다. 혀가 부드럽지만 혀 시스템의 깊숙한 곳에 굳어있는 덩어리가 있어서 곱지 못한 말이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불쑥 나가버린 적도 많다.

 물조리개로 부드럽게 물을 뿌려주어야 하는 새싹에게 그만 나이아가라폭포수를 투하해버린 적도 없지 않다.

 꿀물도 적당히 따뜻한 물이나 시원한 물에 희석시켜서 마셔야 하는데 꿀을 너무 많이 타는 바람에 목구멍 속에서 불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비단으로 되어 있는 끈으로 헝클어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만 묶어주어야 하는데 질끈 동여매서 질식하기 직전에 이르게 하는 일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心迷則此岸 심미즉차안
心悟則彼岸 심오즉피안
心邪則此岸 심사즉차안
心正則彼岸 심정즉피안


마음이 미혹한 상태로 있으면
이쪽 언덕 차안이고
마음이 깨달아서
알아차리는 상태로 있으면
저쪽 언덕 피안이요
마음을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 달리는 것처럼
삿되게 쓰면 차안이고
마음을 기차가
철로 위를 제대로 달리는 것처럼
바르게 쓰면 피안이다.


 ‘삿될 사’자는 기차가 철로를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몸이 탈선하거나 마음이 탈선하는 것을 말한다. 아는 분 중에 한 분은 참선에 대한 집착도 벗어나야 한다고 농담으로 탈선[脫禪]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口說心行 구설심행
卽自法身 즉자법신
有波羅密 유바라밀
口說心不行 구설심불행
卽無波羅蜜 즉무바라밀


입으로 말하면서 마음으로 실천하면
자기의 법신에 반야바라의
꿀물이 흐를 것이고
입으로 말만 하면서 마음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반야바라의 꿀물이
흐르지 않을 것이다.



 한문을 읽다보면 명사가 동사로 확 살아 움직일 때가 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명사로 있을 때는 졸고 있는 공작새처럼 조용하지만 동사로 살아나면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편 것처럼 맥이 펄펄 뛴다. 항공모함이 정박상태로 있다가 빌딩처럼 높은 파도를 유유히 가르면서 달리는 것처럼,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한문 문장에 피가 흐르고 맥동이 고동친다.

‘바라밀이 있다’고 번역해도 되지만 ‘반야바라의 꿀물이 흐른다’고 번역한 까닭이기도 하다.

통증으로 굳어있는 우리 손목이나 발목이나 어깨, 허리, 목도 마찬가지이다. 굳어있는 상태로 있을 때는 왜 이놈의 어깨가 매달려 있어서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고 하는 생각이 24시간 끊어지지 않고 일어나지만 어떤 인연을 만나서 굳어있는 상태가 조금 풀려서 피가 흐르고 기혈이 뚫리고 맥이 뛰기 시작하면 어깨에 대한 참회와 더불어 감사의 마음이 반야바라의 꿀물처럼 솟아오른다.

전신으로 굽이쳐 흘러 발가락 끝까지 맥동이 전해지고 손목과 손가락에 든든한 힘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불보살님에 대한 감사함이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장 대장 위장의 안쪽 벽에서 휘돌아 흐르는 땀으로 우러나와 모든 혈관을 타고 흐른다. 오온개공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육조 스님의 금강경 서문에는 그런 힘과 맥동이 구절구절 굽이쳐 흐르고 있다.






· 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 출처: 미디어조계사
· 참고자료: 금강경 주석서의 백미 ‘금강경오가해’ - 지안스님의 삼장순례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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