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오고가는 분이 아니시건만 ‘부처님오신날’은 해마다 찾아온다. 달력이 내비게이션이 되어 붉게 표시를 하면 곳곳에 걸리는 오색연등과 함께 잊지 않고 찾아온다. 작년에도 찾아왔고 금년은 눈앞에 다가와 있고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찾아올 것이다.
2500여 년 저편 지구의 역사에서 부처님은 왜 찾아오신 것일까. 그 전에는 안 오셨던 것일까. 아니면 오시다가 중간에 핸들을 돌렸던 것은 아닐까. 항상 계시는 부처님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부처님오신날’도 감사하기 그지없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유형무형의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주시며 오셨기 때문이다. 무릎의 관절통은 차라리 내 무릎이 직접 아프기도 하고 걷기에 불편해서 눈으로 보면서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생계 시스템 전체를 연결시켜 주고 있는 중요 관절이 아프면 참 대책이 난망하기만 하다.
꿈을 꾸었다. 인왕산 중턱쯤인가를 걷고 있었다. 바위가 아름다운 곳이 있어서 길에서 살짝 옆길로 들어섰다. 어라, 호랑이 두 마리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한 호랑이는 젊은 호랑이였고, 한 호랑이는 지긋하게 나이도 있고 기품이 느껴지는 호랑이였다. 나이 지긋한 호랑이는 점잖은 자세를 취하고 있고 젊은 호랑이는 어디가 많이 불편한 듯 표정도 일그러져있고 어정쩡한 자세로 반쯤 누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호랑이가 말을 건넨다.
“아니 그래 어쩌다가 몸이 그렇게 되어서 고생을 하고 있소?”
젊은 호랑이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겨우 말을 꺼낸다.
“아, 예, 제가 신체단련을 하다가 그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타고난 신체만 해도 바위를 날아다니는데 또 뭘 단련하려고 했소?”
“제가 좀 특수한 단련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바위와 바위를 날아다니듯이 점프해서 뛰어다니는 건 너무 심심해서 온몸을 바위 밑에 부딪친 다음 그 탄력으로 튀어 올라서 바위 꼭대기에 서 한쪽 앞발로 물구나무서는 자세를 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바위 밑바닥에 부딪쳐서 튀어 오르는 것까지는 잘 됐는데 바위 밑에 부딪칠 때 어깨 어디를 잘못 부딪쳤는지 바위 꼭대기에서 물구나무를 서려는 순간 어깨가 으지직 소리를 내면서 무슨 번개 비슷한게 치더니 그 만 툭 떨어져서 이 모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때 내가 있었더라면 스마트 폰으로 찍어서 물구나무서는 걸 찍었을 텐데 안타깝소. 떨어지는 장면은 빼고 잠시 바위 위에서 호랑이가 물구나무서있는 장면만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렸으면 검색어 실시간 1위를 한동안 점유했을 텐데 이제 다시 해보라고 시키기도 좀 그렇고….”
“아니 호랑이 어르신, 지금 저를 놀리십니까? 뼈가 으스러졌는지 뼛조각 끝과 끝이 서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 죽겠는데, 인터넷 얘기나 하시고…. 그러지 말고 아웃터넷 얘기도 해보시지요.”
“안그래도 저 세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얘기를 들려주려고 했소. 그대는 호랑이의 분수를 넘어서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 아니오. 아니 그래, 점잖게 어슬렁거리면서 인왕산이나 잘 지킬 일이지 뭐가 답답해서 그런 잔재주를 익히려 했단 말이요.”
“제가 아직 젊지 않습니까. 피가 끓다보니 그만….”
“어허, 잠자코 내말을 좀 더 들어보시오. 그대가 분수를 어기고 돌출행동을 하다가 어깨에 치명상을 입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 중에도 더러더러 분수를 벗어나는 엉뚱한 행동으로 이목을 집중 시키려다가 어깨도 다치고 발목도 부러지고 허리도 꺾어지고 심지어는 아주 중요한 부위에 멍이 드는 사람도 있소.”
“아주 중요한 부위를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떼끼, 음흉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내가 말하는 아주 중요한 부위는 두 눈 사이에 있는 미간을 말하는 것이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는 다른 데를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사람 다치는 얘기를 들으니 제 통증이 그 고소함 때문에 좀 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얘기를 해주시지요.”
“쯧쯧쯧. 저렇게 남의 아픔을 아파해줄 주를 모르고 고소하게 여기니, 다쳐도 싼 젊은 호랑이로고.”
젊은 호랑이는 그냥 입만 쩝쩝 다셨다.
나이 지긋한 호랑이가 인왕산 아래쪽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보시오. 저 아래 줄줄이 연결되어 빛나고 있는 것이 보이시오?”
“예. 해마다 저렇게 한동안 줄줄이 연결되어 빛나다가 없어졌다가 하던데 그게 뭔지 궁금한 적은 없습니다.”
“저건 말이오. 사람들이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길거리에 전선줄을 길게 연결시키고 연등을 켜는 것이오.”
“호랑이 어르신 부처님은 뭐고 연등은 또 뭡니까? 제가 무술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인문학 지식이나 교양이 워낙 짧습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호랑이와 식물과 인왕산의 바위에게까지 자비를 베풀어주는 분이오. 그대가 그걸 모르니 인왕산의 바위가 그대를 혼내준 것 아니오.”
“아까는 툭 쳐서 아프게 하더니 이번에는 말로 제 아픈 곳을 쿡쿡 잘도 찌르십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이제 착하게 살아볼 자세를 익혀보겠습니다. 줄줄이 빛나는 저 연등은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그건 세상을 밝히는 것이오. 저 연등 덕분에 이 캄캄한 인왕산까지도 다 환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소. 저 연등은 저렇게 빛을 내서 세상의 어두운 곳도 밝히고 특히 사람이나 호랑이와 바위덩이들의 마음이 어두운 곳에 있기 마련인데 그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데 아주 특효가 있는 것이요.”
젊은 호랑이의 눈빛이 점점 선량해지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호랑이가 부처님과 연등에 관해 차분히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동자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몸을 약간 일으켜 세우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르신의 말씀을 듣다 보니 제 어깨가 반쯤은 나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꼼짝도 못했는데 절뚝거리기는 해도 이제 바닥을 디딜 수도 있는데요.”
나이 지긋한 호랑이가 젊은 호랑이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함께 바위 저쪽으로 걸어갔다.
꿈에서 스르르 깨어났다.
조계사에서 버스를 내려 인왕산을 바라보니 인왕산 전체가 그 나이 지긋한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의 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富有萬德
부유만덕
부유하기로는 만덕을 갖추고 계시다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을 기점으로 해서 개인의 모든 아픔과 우리 사회의 아픔까지 함께 싸악 치유가 되어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덕을 갖추게 하십사 간절하게 축원을 올린다. 다시 보니 인왕산 그대로가 환한 연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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