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새들이 힘차게 노래를 하고 있다. 새가 노래하는 글자는 울 명[鳴]자인데 입구에 새조가 달려있다. 새의 몸속에 들어있는 에너지가 새의 부리를 통해서 마음껏 밖으로 분출되는 입체적인 에너지가 저절로 느껴진다. 사람도 즐거우면 입으로 노래를 부르고 슬프면 꺼이꺼이 비명이 입을 통해서 나온다. 기운을 모아서 무엇을 할 때는 기합소리를 내기도 한다. 흘러가버릴 봄이기는 하지만 봄에는 봄을 즐기고 여름에는 여름을 즐기고 가을도 겨울도 그렇게 할 일이다.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을 다게(茶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石火光陰 夢一場
석화광음 몽일장
부싯돌 불 번쩍거리는 사이에
한생이 흘러가니
우리네 인생
한 바탕 봄꿈이로세
돌석(石)에 불화(火)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 석화는 부싯돌 두 개를 부딪쳤을 때 번쩍하고 튀는 불꽃이다. 그 짧은 찰나에 거기서 불을 붙여서 활용하기도 하지만 지나간 인생을 잠시 돌이켜 보면 그 번적거림보다 오히려 짧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진관사 송찬우 선생님 49재에 참석했다. 한옥마을이 들어서고 있고 주변경관이 참으로 상전벽해로 변해있다.
종범 큰스님께서 영가법문을 하셨다. 나직하지만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게송을 읊조리신다.
了知一切法
요지일체법
自性無所有
자성무소유
如是解法性
여시해법성
卽見盧舍那
즉견노사나
일체 모든 법에
자성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이와같이 법성을 알아차리면
곧바로 노사나를 보리라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사나는 비로자나불이다. 고요한 광명이다. 빛 이전의 빛이다. 자외선 카메라와 적외선 카메라로 잡는 빛보다 더 그 전에 있는 적광(寂光)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부른다. 스님께서 부연설명으로 또 다시 게송을 설명하셨다.
一物長靈
일물장령
遍現十方
변현시방
日出名晝
일출명주
日沒名夜
일몰명야
한 물건이 길이길이 신령스러워서
시방세계에 두루 나타나니
해가 뜨면 낮이라 부르고
해가 지면 밤이라 부른다네
딱히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냥 한물건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이 한물건에 집착하면 한물건이 자꾸 여러물건이 되어버려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황사가 되어 날아오기도 하고 황새가 되어 날아가기도 한다. 밥도 먹고 소화시켜서 자연으로 보내기도 한다.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다가 넘어져서 발목을 접질리기도 한다.
강의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듣다가 졸면서 꿈을 꾸기도 한다. 49재를 지내기도 하고 재를 받기도 하고 그 중간에 법문을 하고 법문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재를 올리는 동안에 법당 문을 스치는 바람이 되기도 한다. 바람 따라 낙엽이 되어 마당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 영가법문으로 송교수님을 만나게 될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하고 말씀하실 때, 가슴이 한참 먹먹해졌다.
생사가 없고 자성이 없는 도리를 친절하게 설명하신 스님께서 마무리 게송을 나직하게 읊으셨다.
雖然如是
수연여시
末後一句 云何道
말후일구 운하도
비록 이와 같긴 하지만
말후일구를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짧으면서도 긴 침묵이 잠시 흘렀다.
月沈西海黑
월침서해흑
日出東山紅
일출동산홍
달이 가라앉자
서해바다가 깜깜해짐이요
해가 뜨자
동쪽 산이 붉으레하도다.
햇볕 전등 몇 번 켜지고 달빛 전등 켜지고 빗속에 전등불 잠시 사라지기도 하고 구름이 전등빛을 가리기도 하지만 부싯돌 번쩍이는 불처럼 다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 글을 쓰는 찰나에도 지나가고 읽는 순간에도 지나간다.
가수 최백호는 일반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
중간은 생략하고 끝 소절을 함께 읽어본다.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바람만 스쳐가네
바람만 스쳐가네
49재를 마치고 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오는 길. 아직은 조금 차가운 봄바람이 스치운다. 산자락을 스쳐나간다. 솔잎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스쳐가고 있다.
아직 잎이 피어나지는 않았지만 은행나무 가지마다 봄기운의 힘이 느껴지고 있다. 겨우내 잠시 움츠리고 있던 나뭇가지의 근육과 인대를 풀면서 관절을 나무는 스스로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도 세월이 흐르면서 몸의 근육과 인대는 굳을지라도 마음의 근육과 인대는 부드럽게 가꿀 일이다.
마음의 근육이 굳으면 전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게 된다. 고집의 근육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새끼손가락 끝에서 두 번째 뼈마디에 참으로 고생이 많다고 격려를 보낼 일이다. 그렇게 손가락의 뼈 마디마디와 발가락의 뼈 마디마디와 전신의 뼈 마디마디에 이제 봄도 오고 했으니 다시 힘내서 걷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뛰기도 하자고 격력의 박수를 자기 자신에게 보낼 일이다.
일반 물과 성분이 조금 다른 비싼 액체를 분해해서 소화하느라 지칠대로 지쳐있는 간에게도 부드럽게 파이팅을 외쳐줄 일이다. 각각의 모든 신체 장기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대동맥과 대정맥과 동맥혈맥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모세혈관님들 참으로 수고가 많으시군요.
대지의 봄 기운을 온 몸으로 맞이할 때이다. 엄지발가락 끝으로 봄이 이미 와있는 대지를 꿋꿋하게 딛고 다시 한걸음 한걸음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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