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채 앉아만 있네
남긴채 앉아만 있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채 앉아만 있네
그리스가 낳은 불후의 음악가 미키스 데오도라키스가 남긴 곡이다. 아그네스 발차라는 소프라노 가수의 목소리가 구슬픈 기타의 선율을 따라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흐른다.
앞에 소개한 가사는 우리나라의 조수미의 목소리로 되어있는 번안곡이다.
불교한문 사부님이신 보문동현 송찬우 선생님께서 입적하셨다. 서방정토행 구름기차를 타고 떠나셨다. 이 글을 쓰려고 오는 길에 또 “누구신데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하고 친딸에게 말씀하시던 분이 지구생활을 정리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한 번 오면 다시 가는 길.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오고 그렇게 가고 떠나고 지구에 잠시 머물면서 온갖 연극대사를 읊조리고 각자각자 드라마틱한 영화를 찍고 있다.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忽至百年 云何不學
홀지백년 운하불학
一生幾何 不修放逸
일생기하 불수방일
홀연히 백년 인생이 지나
죽음에 이르거늘
배우지 않을 수 있겠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생이
얼마나 된다고
수행하지 않고 방일하게
게으름을 피우겠는가
보문동현 선생님께서는 위암 말기로 힘겨운 투병을 하셨는데 입적하기 50분 전에 몸을 일으켜달라고 하고는 좌선 자세로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하게 염하시면서 편안하게 입적하셨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아, 선생님께서는 카테리니행 기차가 아니라 서방정토행 구름기차를 타고 떠나셨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카테리니행 기차에 몸을 실은 사람은 나찌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이에 저항했던 그리스의 청년 레지스탕스이다. 비밀임무를 띄고 카테리니라는 도시를 향해 떠난다. 연인이 떠나버린 기차역에 홀로 남겨진 아픔을 끌어앉고 있는 여인의 애절함이 절절하게 흘러 나오는 저 앞의 노래를 유투브를 통해 귀에 입력시키면서 나는 선생님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고 있다.
뭉클거리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번역서를 내실 때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과정에서 원문대조를 하면서 교정을 보던 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흘러나갔다.
참 감탄도 많이 했다.
‘원문에 이렇게 되어있는 한문이 이렇게 한글로 옮겨지는 세계가 있었구나.’,
‘한 글자나 두 글자에도 대장경 전체의 내용이 마치 압축파일처럼 압축적으로 들어있다가 강의나 번역을 통해 파노라마처럼 압축된 내용이 풀려 나오는구나.’,
‘때로는 깊은 내용을 다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 간단하게 원문을 한글로 직역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구나.’
발심수행장은 조금 주의 깊게 읽어본 사람은 ‘몸은 반드시 마침이 있다.身必有終’라는 구절에서 한글로 간단하게 옮겨진 내용 말고 그 글자들 속에서 태평양의 심연의 파도가 꿈틀거리는 것보다 더한 무한팽창 우주 은하계의 에너지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꿈틀거리면서 가슴 속에 동심원의 파문을 그려낸다는 것을 안다.
때로는 번역이나 강의가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생님께서는 한 1년 전쯤에 <왕생정토론>을 강의하셨다. 그 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에 보여주신 모습에서 새삼 강의의 힘을 느끼기도 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염불을 통해 서방정토에 왕생한 이야기가 많다. 중국 어느 시대에 왕씨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청소년 시절에 출가하여 절집에서 강사를 할 정도로 경전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인연이 흘러 전쟁터에 나가 적군을 무찌르는 장군이 되었다.
이 왕씨성을 가진 사람이 ‘신필유종’의 법칙에 따라서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되었다.
“그대는 전생에 수없는 살생의 업을 지었으니 지옥으로 가야겠구나.”
염라대왕이 방망이를 내리치려는 찰나에 이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염라대왕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염라대왕님. 제가 비록 나중에는 장군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살생의 업을 짓긴 했습니다만, 젊은 시절에 정토경전을 더러 읽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나무아미타불’하고 열 번만 소리내어 읽으면 죽어서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제가 젊어서 경전을 강의했는데 나무아미타불하는 소리를 열 번도 안했겠습니까? 지금 염라대왕님께서 저를 지옥에 떨어지도록 판정을 내리면 경전을 알지 못하는 업을 짓는 것이니 염라대왕님도 저와 함께 지옥행 기차를 타야 할 것입니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십시오. 제가 협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의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 뿐입니다.”
염라대왕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는지 어쨌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이 왕씨성을 가진 사람은 극락행 티켓을 재발급 받고 지옥행 티켓은 반납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금강경을 읽어 보니 다가오는 깊이가 다르다.
一切有爲法
일체유의법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모든 유의법은 꿈같은 것이고 마술과 허깨비로 만든 것이며 잠깐 동안 생겼다가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것이고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는 것이며 톡 떨어져버리는 이슬같고 번쩍 사라지는 번갯불 같은 것이니 내 몸이 이와 같은 것임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느니라.
꽃잎이 되고 나뭇잎이 될 에너지가 뿌리 깊은 곳에서 나무 밑둥치까지 벌써 올라와 있다. 꽃샘추위 선풍기가 한 번 돌고 나면 꽃피고 새우는 봄기운이 몸속에도 감돌고 세상에도 퍼져나갈 것이다.
선생님 타고 가시는 구름기차의 바퀴에도 봄윤활유의 에너지가 틀림없이 공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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