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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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典) 속 명구(名句) 여행] 11. 유마경 관중생품 구절에서




 가을이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번에는 유마경 관중생품(觀衆生品)의 내용을 읽어본다.
먼저 번역문으로 내용을 소개하고, 천녀와 사리불 존자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은 원문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문수사리 보살이 유마힐 거사에게 묻는다.


문수사리: 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관합니까?

유마힐 거사: 비유하면 마술사가 허깨비로 만든 사람을 보는 것처럼 합니다. 보살이 중생을 관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마치 지혜로운 사람이 물속의 달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중생을 관하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중생을 관합니다.

땅에서 열이 올라올 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중생을 관하며,

‘야호’했을 때 돌아오는 메아리 소리처럼 관하며,

허공에 떠있는 구름처럼 관하며,

물거품처럼 관하며,

물 위에 떠있는 물방울처럼 중생을 관합니다.



 사실은 자신의 몸을 이렇게 관하라는 이야기이다. 내 몸은 내 마음의 거울 속에 떠있는 그림자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 깜박하고 이 몸이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잔뜩 움켜쥐고 있다. 그림자인줄 알면 누가 오른쪽 뺨을 때렸을 때 왼쪽 뺨뿐만 아니라 손바닥 발바닥까지 다 내줄 수 있다. 그림자를 아무리 후려쳐본들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내 몸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그렇게 관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누가 우리집 대문 앞에서 얼쩡거리기만 해도 저 사람이 우리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지 않을까 코브라처럼 경계심의 목도리를 잔뜩 추켜올리는 사람이 혹 가다가 없지 않다.

어느 대학의 총장을 지내시기도 한 스님께서 전에 강의하시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스님께서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법문을 하면 법문을 들은 사람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법문을 열심히 들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면서 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으셨단다. 그런데 얼마 후에 자세히 보았더니 법문을 들을 때뿐이고 집이나 직장에서는 전혀 법문의 내용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필자도 지금 유마경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글을 읽고 자신의 몸과 천지만물과 다른 사람이나 아들, 딸을 그림자로 메아리로 관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참으로 간절하게 바라지만 현실화되기는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에 있는 기둥들은 잘 알고 있다. 기둥 옆에 있는 좋은 기도 자리를 두고 노보살님과 젊은 보살님이 자리다툼을 하는 것을 눈 없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웅전의 출입문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새벽 예불이 시작되기 전에 와서 딱 지키고 있는 모습을 한 두 번 보았겠는가.

스님들의 법문을 듣는 법당에서도 이럴진대 법당 밖의 집이나 직장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우리 스님들도 이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릴 때는 다 그렇게 다투면서 크는 것이라고 어여삐 보시면서 오늘도 내일도 좋은 법문을 해주신다.

유마경의 내용으로 돌아간다. 그 때 유마힐 거사의 방에 한 천녀(天女)가 있었다. 천상의 꽃을 보살과 대제자들에게 뿌린다.

천상의 꽃이 보살의 몸에 닿으면 방바닥으로 툭 떨어져버리는데 대제자들의 몸에 닿으면 착 붙어버렸다. 대제자들이 꽃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꽃은 떨어지지 않는다. 천녀가 사리불 존자에게 묻는다.



천녀: 무엇 때문에 꽃을 떼어내려고 하십니까?

사리불: 이 꽃은 여법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떼어내고자 합니다.

천녀: 이 꽃이 여법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꽃은 분별이 없는데 존자께서 분별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한문과 번역문으로 함께 읽어본다.



若於佛法出家 약어불법출가

有所分別 爲不如法 유소분별 위불여법

若無所分別 是則如法 약무소분별 시즉여법

만약 불법에 출가하여 분별이 있으면 여법하지 못한 것이고 분별이 없다면 이는 여법한 것입니다.


觀諸菩薩 華不着者 관제보살 화불착자

已斷一切分別想故 이단일체분별상고

譬如人畏時 非人得其便 비여인외시 비인득기편

如是弟子畏生死故 여시제자외생사고

色聲香味觸得其便也 색성향미촉득기편야

모든 보살들에게 꽃이 붙지 않는 것을 보니 이미 모든 분별상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두려워할 때 귀신같은 비인(非人)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아서 대제자들은 생사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색성향미촉이 그 틈을 비집고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已離畏者 一切五慾 無能爲也 이리외자 일체오욕 무능위야

結習未盡 華着身耳 결습미진 화착신이

結習盡者 華不着也 결습진자 화불착야

이미 두려움을 벗어나버린 사람은 모든 오욕락이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번뇌의 습기가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꽃이 몸에 달라붙는 것일 뿐이니 번뇌의 습기가 다 없어지면 꽃이 달라붙지 않습니다.


가시가 있는 넝쿨을 걷어낼 때 가시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손으로 넝쿨을 꽉 쥐면 가시가 손을 찌르지 못하지만 가시에 찔릴까봐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면 가시가 손뿐만 아니라 발바닥까지 찌르면서 덤빈다.

삼천배를 할 때 무릎걱정을 탁 놓아버리고 절을 하면 삼천배를 하고 나서 무릎 관절염이 극락왕생하지만 이거 혹시 무릎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절을 하면 멀쩡했던 무릎이 덜렁덜렁 춤을 춘다.

눈앞에 닥쳐온 어려워 보이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래 해봐라 하면 고비가 넘어가지만 어쩌나 하는 생각이 새끼발가락 끝에 매달려 있으면 멀쩡했던 자동차 바퀴가 못 간다고 아우성을 친다.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이것은 내 것이다 하는 데서 온다. 이 남자는 오로지 내 남자라고 생각하는 찰나부터 이 남자가 혹시 도망가지 않을까 두렵고 다른 여성들이 혹 채가지 않을까 두렵게 된다.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극소수의 이야기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아주 많은 여성들과 보살님들은 절대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도 않고 그런 꿈도 꾸지 않는다. 아주 어쩌다가 그런 분이 금생에 공부삼아서 그렇게 집착을 해보기도 한다고 들었다.

천녀와 사리불 존자의 대화를 번역문으로 좀 더 소개한다.



사리불: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천녀: 나는 12년 동안 여인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까?


천녀가 신통력으로 사리불 존자를 여인의 몸으로 바꾸어 버리고 자신은 사리불의 모습으로 바꾼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말한다.



천녀: 사리불 존자시여. 존자께서 여인이 아닌데 여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과 같습니다. 모든 여인들도 마찬가지여서 비록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모든 법에 있어서 남자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자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하고 설하신 것입니다.


남성이니 여성이니 하는 것은 우리네 분별상일 뿐이고 오로지 불성만 있을 뿐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불성 대장부의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일이다.






· 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 출처:미디어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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