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照長空 影落千江之水
월조장공 영락천강자수
能仁出世 智投萬彙之機
능인출세 지투만휘지기
달이 긴 허공을 비춤에
그림자가 일천 강물에 드리우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에
지혜가 일만 중생의 근기에
딱딱 맞으시네
월조장공 영락천강자수
能仁出世 智投萬彙之機
능인출세 지투만휘지기
달이 긴 허공을 비춤에
그림자가 일천 강물에 드리우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에
지혜가 일만 중생의 근기에
딱딱 맞으시네
《대예참례(大禮懺禮)》에 나오는 구절이다.
《수청집(水淸集)》에 나오는 구절도 함께 읽어본다.
水淸而靜則 月現全體
수청이정즉 월현전체
月非取水而遽來
월비취수이거래
水濁而動則 月無定光
수탁이동즉 월무정광
月非捨水而遽去
월비사수이거거
在水則有淸濁動靜
재수즉유청탁동정
在月則無取捨去來
재월즉무측사거래
물이 맑고 고요하면
달이 전체의 모습을 나타내지만
달이 물을 취해서
갑자기 이르러온 것이 아니고
물이 흐리고 요동치면
달의 고요한 광명이 없지만
달이 물을 버리고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니니
물에는 맑고 흐림과
요동침과 고요함이 있지만
달에는 취함과 버림과
가고 옴이 없다네.
맑고 고요한 때도 있지만 때때로 흐려지면서 요동치기도 하는 물은 중생의 마음이다. 조계사 법당에 앉아계신 부처님의 상호가 어느때는 이렇게 보이고 어느때는 저렇게 보이는 것은 다 우리네 마음 상태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부처님의 상호는 24시간 365일 늘 원만하시건만 어떤 날, 살짝 찌푸린 듯 보인다면 100% 하고 20% 더 내 마음 어딘가가 찌푸려져 있는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늘은 부처님께서 왜 저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나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다. 부처님은 찾아오는 중생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어주신다. 거울에 때가 끼게 할 것인가 깨끗하게 닦을 것인가 하는 것은 모두 나의 책임이다.
주변사람이 나에게 보여주는 모든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연못의 물이 흔들리고 흐리면 연못주변의 나무 그림자도 연못 속에서 흔들린다. 내 마음이 흔들리고 뒤틀려 있으면 바른 말을 해주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들이 몹시 원망스럽게 들린다. 험한 낭떠러지로 걸어갈 때 자신이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렇게 가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진다고 간곡하게 말해주는 주변 사람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야속하게 들린다. 내가 이렇게 잘 가고 있는데 아마 저 사람은 내가 잘되는 것이 질투가 나는가 보다하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맑은 상태이면 지나가는 사람이 갑자기 욕설을 퍼부어도 감로수를 마시는 것처럼 달게 들린다. 욕설이 감로수로 들려오는데 바른말이야 말해 무엇 할 것인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로 들어갈 때 돌아가신 필자의 부친께서 중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참으로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마 어쩌면 친자식이 아니어서 저러시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다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말씀을 들을 걸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학까지 나와서 뭐하자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말했다.
부처님이 어느 명문 불교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다. 공자님은 논어에 대해서 논문을 쓰신 적이 없다.
부처님의 경전을 읽으면 환희심이 솟아오른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간다. 마음도 고요해진다. 고요해진 마음으로 경전을 다시 읽으면 그 의미가 한없이 깊어진다.
일본사람들이 고맙다고 하는 말을 ‘ありがとう(아리가또)’라고 표현한다. 이 말의 한자말은 ‘유난有難’이다. ‘당신께서 저에게 이렇게 해주시는 것은 참으로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하는 뜻이다.
당연히 고마울 수 밖에 없다. 이 말은 <개경게(開經偈)>에서 나왔다. 개경게를 함께 읽는다.
無上甚深微妙法 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遇 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 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義 원해여래진실의
위없이 깊고 깊어서 미묘한 법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워라
제가 이제 듣고 보고 받아지니니
원하옵건대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고자 하옵니다.
학교 다니면서 글자를 배우는 바람에 쓸데없는 고생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다가도 경전을 마주하면 글자를 익힌 보람이 저절로 생긴다. 배우긴 배워야 한다. 흔들리는 흙탕물의 마음이 아니고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배울 일이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하시는 말씀은 허공의 달이고 읽는 우리의 마음은 연못물이다. 연못물이 맑고 고요하면 달그림자가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연못 바닥까지 환하게 비추어준다. 연못 바닥에 있는 돌멩이에 낀 이끼까지도 보인다. 이끼에 살짝 앉아있는 세균도 다 보인다.
그러나 물이 흐리면 허공에 달이 떠있건만 연못에 그림자가 내려오지 않는다. 이끼는커녕 돌멩이도 보이지 않는다.
성큼 가을이다. 해마다 오고가는 가을이건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가오는 계절의 농도가 점점 짙어진다. 곧 시냇물이 줄어들면서 밑바닥에 있던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가을햇살이 창호지 틈새로 방에 들어오면 그 빛줄기를 따라서 먼지가 허공에 떠 있다.
햇살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옆으로 떠있는 먼지 기둥이 보인다.
평소에 고요한 듯 보이는 마음이지만 경전을 읽으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먼지 기둥들이 반드시 보인다. 마음속의 먼지 기둥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부처님이거나 아니면 다른 경우일 것이다. 다른 경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필자의 경우 대강대강 경전을 읽을 때는 먼지기둥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개경게를 정성스럽게 읊고 경전을 마주 대하면 마음 깊은 속의 또 깊은 속에서 풀석거리고 있는 먼지더미들이 보인다. 환하게 들어오는 경전의 불빛에 그 먼지더미들이 먼지기둥이 되기도 하고 먼지 토네이도가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먼지 태풍이 온몸을 덮쳐서 불고 있는 경우도 있다. 탐진치貪瞋癡의 미세한 먼지 알갱이는 정말 미세하고 미세하다.
정성스럽고 느긋하게 경전을 읽노라면 먼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먼지가 바로 빛 알갱이로 변한다. 어깨뼈 한쪽 모퉁이를 기묘하게 괴롭히던 통증먼지도 덩달아서 시원한 빛의 알갱이로 변한다. 조금 더 고요하게 경전을 읽으면 빛 알갱이들이 빛줄기로 변한다. 빛 알갱이는 아직 약간의 서걱거림이 있다. 그 서걱거림이 잦아들고 뽀송뽀송한 빛줄기가 경전의 글자 글자마다 솟아나온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하는 빛으로 된 물줄기가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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