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페이지

[불전(佛典) 속 명구(名句) 여행] 4. 야운선사 '자경문' 중에서 / 어사 박문수 장원급제시 낙조(落照)




매주 토요일 한문공부 모임에서 오늘 <자경문自警文> 공부를 마쳤다. <수행과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경책하는 글>인데 조선시대 야운 비구(野蕓 比丘) 스님께서 저술하셨다. 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얼마 안 되지만 다들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열심히 하는지 여기서 느끼는 보람도 적지 않다.

야운 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경책을 내리신다.



我如良醫(아여양의)하야
知病設藥(지병설약)하노니
服與不服(복여불복)은
非醫咎也(비의구야)며
又如善導(우여선도)하야
導人善道(도인선도)호대
聞而不行(문이불행)은
非導過也(비도과야)라.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고 약을 처방해주노니
그 약을 먹고 먹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며
또 훌륭한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데
그 말을 듣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잡이의 잘못이 아니라네.


 머리카락 한올 한올 전체가 쭈뼛하게 솟아오르는 말씀이다. 이 말을 듣고도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공부를 이미 다 마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부처님께서 몰래 숨겨놓은 애인일 것이다.

오늘 이 대목을 읽고 필자는 대오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문공부 안내역을 맡아서 나름대로 정성껏 안내한다고 하고 있긴 하지만 혹여 한문의 가시밭길로 안내해서 발가락마다 상처가 나서 피를 줄줄 흐르게 하는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깜깜한 한문동굴로 들어가게 해서 머리가 부딪치고 팔꿈치가 부서지고 손가락이 부러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준엄하게 스스로를 점검해 볼 생각이다.

또 부처님께서 처방해주신 약을 순순히 먹는다 해도 그 약을 잘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기능을 확실하게 갖추고 있는지, 소화시킨다고 해도 소화된 다음에 발가락 끝까지 손가락 끝까지 약효를 전달하는 고속도로망은 잘 정비되어 있는지도 이 참에 단단히 잘 살펴봐야 하겠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토록 자상하고 친절하게 길 안내판을 요소요소 마다 설치해주셨건만 혹 나 자신이 그 안내판의 글 획수를 빼먹고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할 수만 있다면 뇌세포 하나하나 불러서 다시금 확인하고 점검해보아야 하겠다. 안내판을 따라서 잘 가고 있다 해도 그 길을 달리고 있는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의 바퀴는 적절한 공기의 압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브레이크의 상태는 어떤지, 백미러의 각도는 잘 조절되어있는지 등등 살펴보고 점검해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줄창 길만 따라가느라고 길옆에 피어서 방긋방긋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 꽃들의 인사를 본의 아니게 외면한 적이 많구나 하는 반성을 저절로 갖게 된다. 주유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덥석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놓는 바람에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 엔진이 타면서 고약한 냄새를 피우고 있는데도 이놈의 자동차가 왜 이렇게 말썽인지 모르겠다고 입에다가 17+1과 19-1을 매달고 있는 것도 똑똑히 봐야겠다. 발가락 열 개의 끝부분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의식을 집중해본다.

한 번 눈에 스친 구절이 너무 좋아서 그 구절이 자꾸 생각나고 생각하기만 해도 뇌세포들이 뜨뜻한 사우나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나뭇잎이 이슬에 젖듯이 두개골 틈 속이 촉촉한 아침이슬에 씻겨지는 느낌을 받는 구절이 있다.

바로 <자경문>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이다.



三日修心(삼일수심) 은
千載寶(천재보) 요
百年貪物(백년탐물) 은
一朝塵(일조진) 이니라

3일 동안 마음을 닦는 것은
천년 가는 보배이고
백 년 동안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티끌 먼지 이니라.


 고려시대의 일이다. 혜소국사께서 안성 칠장사에 주석하고 계셨다. 지금이야 길이 잘 나있지만 아마도 고려시대엔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다. 그 첩첩산중 절집에 7인의 사나이가 복면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어느 날 들어온다. 이들은 인수인계 절차를 생략하고 남의 집 물건을 제 마음대로 장소 이동시키는 사람들이다. 중간과정은 생략하고 이들이 잡혔다. 그리고 혜소국사 큰스님 앞에서 차 한 잔을 하게 되었다.

큰 스님께서 손수 차를 달여서 7개의 찻잔에 차를 따른다. 보이차인지 녹차인지 역사기록물이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국사스님께서 드시는 차이니 맛좋은 차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몇 순배 찻잔이 돌고 7인의 사나이들의 긴장이 좀 풀리고 이들의 대장과 소장이 따뜻해지려는 찰나, 슬며시 큰스님께 좋은 말씀 부탁드린다고 대장으로 보이는 사나이가 정중하게 청한다.

그냥 차나 마시면 되지 새삼 무슨 좋은 말씀이 따로 있겠느냐고 점잔을 빼시던 스님께서 일곱 사나이가 합심해서 “너무 길지 않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하고 애원하다시피 부탁을 드리자 내려주신 말씀이다.

이 사나이들 전생에 대장부의 공덕을 지었던지 열심히 수행정진해서 나한의 경지에 오른다. 이 글 읽고 혹시나 큰 스님 만나려고 직업을 복면 쓰고 다니는 걸로 바꾸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은 필자의 기우일 것이다.

지금도 안성 칠장사에는 이 일곱 분의 나한님을 모셔놓은 나한전이 있다. 수험 공부하는 이들의 기도에 응해주는 영험이 크다고 한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또 한 사나이가 칠장사에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훗날 유명세를 타는 어사가 된 과거응시생 박문수이다.

선잠이 든 상태에서 나한님을 뵙는다. 일곱 나한님들이 이 청년 옆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뭐 별로 해줄 건 없고 저 청년이 과거 보러간다고 하니 시 구절이나 하나씩 불러서 저 청년 머리의 뇌세포를 편안하게 훈련시켜 봅시다.”

그렇게 칠장사에서 숙박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서울에 도착, 과거장에 앉았을 때 과제 플래카드가 착 걸렸다. 응시생 박문수의 눈에 과제가 들어오는 순간 나한님들께서 불러주신 구절들이 청년의 붓을 통해 일필휘지로 써진다.



落照吐紅掛碧山(낙조토홍괘벽산)
寒鴉尺盡白雲間(한아척진백운간)
放牧園中牛帶影(방목원중우대영)
望夫臺上妾低鬟(망부대상첩저환)
問津行客鞭應急(문진행객편응급)
尋寺歸僧杖不閑(심사귀승장불한)
蒼煙古木溪南路(창연고목계남리)
短髮樵童弄笛還(단발초동농적환)

낙조가 석양빛을 토해내며 푸른 서산에 걸리니
금까마귀들이 자척자를 그리면서 흰구름 사이를 날아가네.

산중턱 목장의 소들이 그림자를 배꼽에 두르고
망부대에서 아낙네가 머리쪽을 뒤쪽으로 낮추네.

나루터를 묻는 나그네의 회초리는 급해지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는 휘적휘적

푸르스름 연기 솟는 고목나무 늘어선 시내가 남쪽 마을에
머리 짧은 초동이 유유자적 피리 불며 돌아오네.



장원급제였다.

모든 것을 떠나서 지극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기도하고 수행정진할 일이다.






· 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 출처: 미디어조계사


· 야운선사 자경문 《野雲比丘 自警文》
 야운(野雲, ?~?)은 고려 말의 고승이다. 야운(野雲)은 고려 말의 선승(禪僧)으로 휘가 각우(覺牛)이고, 속명이 우(玗)이며, 호가 몽암도인(夢岩道人) 또는 야운(野雲)이다. 행적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혜근(慧勤)의 시자로 오랫동안 있다가 혜근이 입적한 뒤 중국으로 들어가 불법을 구했다고 한다. 당시 권근 등과 교류가 있었다. 저서에 야운자경서가 있다. 

· 출처


· 관련 자료: 초발심 자경문 듣기 해설 :: 불교타임즈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