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와 있다. 표현을 달리해서 말해보면 우리 모두가 시간여행에서 봄이라는 기차역에 도착했고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여름역을 향해서 달려갈 것이고 가을역이 저멀리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 여행 속의 여행인 불전 속 명구 여행에서 우리가 당도한 기차역은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역이다.
보통 <발심>을 <마음을 일으키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조계사 법당과 어느 인연있는 법당과의 풋풋한 초발심의 추억을 누구나 한 자락씩 간직하고 있다. 지금 막 초발심한 이도 있을 것이고 ‘맞아, 나도 그런 적이 있긴 있었지.’하면서 발걸음이 시큰둥해져있는 이도 아주 드물게 있을 것이다.
필자는 더러 <발심수행장>을 강의하거나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발심>의 <발(發)>은 필 발인데 <온 몸에서 꽃이 피어나듯이 모세혈관을 포함한 전신에서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발심입니다>하고 설명한다.
필자는 1987년 제법 뜨뜻했던 여름날 동국대학교 불교학 자료실에서 <한국불교전서>를 열람하다가 <발심수행장>이 있는 페이지에서 온몸에 전율이 오면서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에 잇는 모세혈관까지 펄떡펄떡 뛰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세로줄로 편집되어 있는 발심수행장이 그 글이 내용이 정말이지 저절로 쑥쑥 내려갔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글이 내려간다>하는 표현을 하는데 그 말이 그냥 이해가 되었다. 동심에 심장이 멎기 직전까지 뛰었다가 다시 안으로 수축되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아련하고 아릿하고 아프면서도 시원한 듯한 입체적인 통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평면적인 글이 아니라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제불제불(夫諸佛諸佛)이
장엄적멸궁(莊嚴寂滅宮) 은
어다겁해(於多劫海) 에
사욕고행(捨欲苦行) 이요,
중생중생(衆生衆生) 이
윤회화택문(輪廻火宅門) 은
어무량세(於無量世) 에
탐욕불사(貪慾不捨) 니라.
대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적멸궁을 장엄하시는 것은
다겁생의 생사고해에서 탐욕을 버리고 고행하신 결과이고,
중생들이 화택문에 윤회하고 있는 것은
한량없는 세상을 거쳐오면서 탐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띵하면서 멍해졌다.
身必有終(신필유종) 하리니
後身(후신)은 何乎(하호)
莫速急乎(막속급호) 며
莫速急乎(막속급호) 아
이 몸은 받드시 죽을 것이니 후에 과보로 받게 되는 모은 어찌해 볼 것인가.
그러니 발심수행하여 이 몸과 마음을 금생에 제도하는 일이
신속하고 급하게 서둘러야하는 일이 어찌 아니겠으며
속히 급히 해야 될 일이 아니겠느냐.
목구멍이 타들어오는 것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입천장까지 바짝바짝 말라 붙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암동 기숙사였다. 도서관에서 내려오고 동국대학교 언덕길을 한참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안암동 로타리에서 심호흡을 하고 개운사가 저멀리 보이는 길을 걸어온 것은 영화의 회상장면처럼 느린 테이프처럼 돌았다.
1989년부터 대학 후배들의 한문공부 안내를 시작했다. 무조건 <발심수행장>을 안보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계사에서 노고가 많은 행정팀장이 그 1기 멤버 중 한 사람이다. 지난핸가 대화를 나누다가 뒤의 내용은 어디로 소풍을 잠시 가있지만 앞구절은 그 입술과 혀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조계사에서 강의하시는 목경찬 선생의 평생도반인 성은경 보살님도 필자와 한문공부를 같이 했었는데 발심수행장을 <만독>했다. 소리내어 만 번을 읽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천독>을 하도록 안내한다. <만독>의 성은경 보살님에게 <가피> 지면을 통해서 진심으로 감사와 격려를 함께 보낸다.
최근에는 법수거사님과 조계사 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평전거사님, 불교대학원에서 공부하시는 능언행 보살님과 관음성 보살님도 발심수행장을 부지런히 읽고 있다. 필자도 나 자신이 좀 늘어지고 나타내졌다 싶을 때는 발심수행장을 소리 내어 나지막히 읊조린다. 풀린 나사가 조여지고 늘어진 빨랫줄이 팽팽해지는 느낌이 바로 살아난다.
몇일 전에 법수거사님과 밤늦게 차를 마시다가 <발심수행장>이야기가 나왔다. 퍼뜩 영감이 스쳤다.
“법수거사님 <조향암혈로 위염불당하고>의 동굴은 산 속의 동굴뿐만 아니라 사실은 우주허공 전체 동굴입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가 바로 조향암혈입니다.”
<발심수행장>의 내용에 나온다.
助響巖穴(조향암혈)로
爲念佛堂(위염불당)하고
哀鳴鴨鳥(애명압조)로
爲歡心友(위환심우)니라
메아리가 웅웅 울리면서 리듬을 맞춰주는
바위동굴로 염불당을 삼고
구슬프게 울면서 박자를 맞춰주는 산새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벗으로 삼을지니라.
그동안 <발심수행장>을 읽으면서 이 대목의 바위동굴은 깊은 산 중의 바위동굴로만 생각했다. 적막한 산 속에서 혹 고독이 깊어질 때 끼욱끼욱 울면서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나 멀리 않은 곳에서 짹짹 울어주는 참새소리는 정말이지 마음을 달래주는 벗일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구의 어느 한 모서리 위에 내가 앉아있고 지구별과 은하수와 안드로메다가 떠있는 이 우주허공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동굴이다.
그리고 그 큰 동굴전체의 기운과 나의 콧구멍이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귀와 콧구멍이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귀와 입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는 한마디 한마디의 목소리가 사실은 우주 동굴 벽에 부딪쳐서 메아리가 되어 디시 나의 귀로 들려오고 있는 것 아닌가 귀로 들어와서 내 몸 속의 대장과 소장 벽을 울려주고 심장의 박동을 도와주고 혈관 벽을 울려서 굳어있는 혈전을 풀어주고 관절을 풀어주고 뇌세포를 깨워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뒤에서 빵빵 재촉하면서 험상궂은 표정의 아저씨가 울리는 경적 소리는 불보살님이 정신 차리라고 울려주는 경책소리이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쓰여진 벽의 글씨는 청정도량 수호대신장의 사인이다.
아, 다시 발심을 해야 하겠구나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잔뿌리 끝에서 줄기뿌리로 기운을 모으고 밑둥치에 집중시켜서 줄기로 끌어올려 가지로 보내고 잎새를 돋게 하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나도 다시금 전신의 모세혈관 끝부터 재점검 재정비해서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원고 마감기한을 존중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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