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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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典) 속 명구(名句) 여행] 2. 금강경 ‘야부송’ / 진각국사 '고분가'




 꿈 속에서 ‘이게 꿈인데’하면서 화면이 계속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대나무에 둘러싸인 제법 큰 연못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가 보이더니 법당으로 오르는 108계단이 나타났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더니 그럴싸한 기와집이 나타났다.

이게 꿈인 것 같은데 깨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기와집을 바라보니 현판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죽림선원(竹林禪院). 아, 선방이로구나.

달빛 속에 선방 뒤쪽 산봉우리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좌우로 굽이쳐 흐르는 산등성이도 참으로 아늑하게 도량을 감싸고 있다. 마당 끝으로 와서 아까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계단 위에서 무언가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다. 조금 전에 올라올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라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이런, 대나무 그림자이다. 달빛이 연못 주변의 대나무 숲을 비추고 덩달아서 대나무 그림자들이 계단을 비로 쓸 듯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옆으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퍼뜩 ‘가피’에 연재하고 있는 글에 쓸 구절이 떠올랐다. <금강경> ‘야부송’에 있는 한 게송이다.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먼지하나 일지 않고
달이 연못 바닥을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조차 없어라.


스르르 눈이 떠졌다. 책상 앞에 원고지가 놓인 채로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 저 ‘야부송’을 소개해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며칠 되었다. 원문 내용만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더니 잠시 조는 사이에 죽림선원이 나타난 것이다. 맨 정신인 지금도 연못이며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던 대숲과 선방과 뒤쪽 옆쪽의 산세까지 너무너무 선명하게 떠오른다.

특히 계단을 위아래로 좌우로 왔다갔다하던 그림자가 극히 인상적이다. 꿈속에서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었다. 대나무가 흔들려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혹시 그림자가 계단에 팔을 짚고 요가를 하는 것처럼 다리를 뒤로 뻗어서 대나무에 걸치고 다리를 이리저리 옮기는 동작에 따라서 대나무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달까지 손을 뻗어서 달을 따다가 연못 바닥보다 더 깊은 저 물속에 끌어다 놓은 것은 아닐까.

우리 몸은 우리 마음의 그림자가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때는 그 말씀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였었다. 50여 년의 길고 긴 몸살 같은 통증을 여러 가지 인연을 통해 많이 극복한 요즘에서야 그 가르침의 깊이를 어느 정도 짐작해보게 되었다.

우리 몸의 상태는 마음의 상태와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거의 정비례한다. 물론 수행력,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몸의 상태와 관계없이 마음의 평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몸 상태만큼 마음이 펼쳐지고 마음이 활동을 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그런데 만약 팔을 밖으로 구부려서 부러뜨리고 철사줄로 꽁꽁 묶은 뒤, 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 팔이 편안하다고 생각해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몸의 불편한 상태를 어떻게 해야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아무리 운동을 하고 요가를 해도 답답하게 펴지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필자는 그 뼈마디에, 그 관절에, 그 손가락마디에, 간에, 위에, 대장, 소장에 ‘미안합니다.’하고 참회하라고 권한다.

몸은 마음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마음이 정말로 풀리면 몸도 풀어진다.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속이 잔뜩 상한 부인이 ‘쾅’ 소리나게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안에서 잠가버린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남편이 밖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건성건성 “에이, 미안해, 미안해.”하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해도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남편이 ‘아, 내가 요걸 이렇게 잘못하는 바람에 저렇게 속이 상했구나.’하고 마음속으로 알아차리면 문을 열어달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이 전달되어 안방 문이 스르르 열리고 표정도 편안하게 된 아름다운 여인이 주방으로 편안하게 걸어간다.

죽을 것처럼 아프고 미칠 것처럼 답답한 자신의 몸 어느 한 곳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프고 답답한지 정확하게만 알아차린다면 틀림없이 풀어질 수 있다. 계단을 쓸고 있는 대나무 그림자가 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달그림자가 물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이번 호에 소개하는 두 번째 구절은 고려 시대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지은 <고분가(孤憤歌)>의 끝부분 게송이다.



萬別千差事
만별천차사

皆從妄想生
개종망상생

若離此分別
약리차분별

何物不齊平
하물부제평

천차만별로 벌어져 있는 일들이
모두 망상에서 생긴 것일 뿐이니
만약에 이 분별심만 떠나버린다면
어떤 것인들 일제히 평등해지지 않으리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고분가>는 진각국사가 열 살 무렵에 지은 글이라고 한다. 이 게송 앞에는 산문으로 된 부분이 있다. 번역문으로 읽어본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개의 구멍이 달린 것은 모두 비슷한데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부유하고, 누구는 귀하고, 천하며, 잘생기기도 하고 못생기기도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찍이 조물주는 사심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헛소리였을 뿐임을 알겠구나.

호랑이는 발톱은 있지만 날개가 없고 소는 뿔은 있지만 날카로운 이빨은 없는데 모기는 무슨 공덕이 있어서 날개도 달려있고 사람을 톡 쏘아대는 침까지 달려있는가.

학의 다리는 기다란데 오리의 다리는 짤막하고 날짐승의 다리는 두 개인데 길짐승의 다리는 네 개다.

물고기는 물에서는 헤엄을 잘 치지만 육지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데 수달은 육지에서도 잘 뛰고 물에서도 헤엄을 잘 친다.

용과 거북이와 학은 천년의 수명을 누리는데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이면 죽어야 된다.

이 모두가 같은 세상에 태어난 것인데 어찌하여 천 갈래 만 갈래로 차이가 나는가.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된 까닭은 알 수 없으니 누가 그렇게 되도록 시킨 것인가. 위로는 하늘에게 물어보고 아래로는 땅에게 따져보아도 천지가 묵묵하게 벙어리처럼 대답을 하지 않으니 누구와 더불어서 이놈의 이치를 토론해보겠는가.

흉중 가슴속에 고독하고 분한 마음이 쌓이고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고민 때문에 골수가 녹아내리는구나. 긴 밤은 늘어지고 늘어져서 언제나 새벽이 밝아올 것인가. 자주자주 창문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그치지 않는구나.

그리고 천지를 대신해서 10세 소년은 게송으로 스스로 대답한다.

그 놈의 망상은 망상해수욕장 가서 바람 쐬면 혹 사라져줄까.






· 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 출처: 미디어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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