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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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佛典) 속 명구(名句) 여행] 1. 감산덕청 선사 '조론약주' / 황벽 스님 게송 중에서




공덕이 하해와 같은 조계사보 편집부 선생님들과 다시 인연이 이어져 연재를 하게 되었다.

한해가 가고 다시 한 해가 오고 그렇게 쉼 없이 가고 오는 세월이 흐른다. 때로는 여유롭게 숨을 쉬면서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세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숨이 가빠진채로 달려들 가고 있다.

새롭게 연재되는 첫번째 구절을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정해보았다.



轉身吐氣
전신토기

몸을 굴려서 위험에서 빠져나와 긴 숨을 토해낸다.


 구마라집 법사의 제자인 승조법사가 지은 <조론>에 명나라의 감산 덕청 선사가 <조론약주>라는 간략한 해설서를 썼는데 그 가운데 나오는 내용이다.

이 구절은 원래 전쟁에서 말을 탄 장수가 적장과 싸우다가 말에서 떨어진 절대절명의 위급한 상황에서 쓰이는 구절이다.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팔다리가 부러져 아파 죽겠는데 적장이 말을 탄채 창을 찔러온다. 눈동자와 창끝이 번쩍 부딪친다. 그 찰나 이 장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팽그르르 굴린다. 그렇게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피하다 이윽고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면 저절로 아랫배보다 더 깊은 뱃속에서 잔뜩 들이쉬었던 숨이 길게 토해져 나온다.

감산대사는 생사윤회라는 기나긴 전쟁에서 나고 죽음이라는 창끝을 피해 중생이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숨을 토해낸다는 의미로 이 구절을 활용했다. 다겁생 수억겁을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생사윤회의 창끝을 피해서 내쉬는 숨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해녀들은 산소호흡기 없이 숨을 깊이 들이쉬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소라, 전복 등을 캐어 바구니에 담아 물위로 올라와 참고 참았던 숨을 길고 길게 토해낸다. 온 바다 위로 퍼져나가는 그 긴 휘파람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부도 마감 하루 전에 간신히 급전을 구해 부도를 막고 나서 내 쉬는 어느 사장님의 날숨과 애타게 원고를 기다리다가 원고 마감 직전에 겨우 접수되어 가볍게 한숨을 토해내는 조계사보 편집부 선생님의 숨 쉬기도 저 해녀의 긴 휘파람 소리와 뭐 별로 다를게 없을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한 숨 길게 내 쉬고 온갖 시름과 걱정을 날려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두 번째 구절은 당나라 황벽스님의 게송 중에서 소개한다.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한 번 매서운 추위가 뼛속을 후비고
지나가지 않는다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황벽스님은 <전심법요>의 저자이다. 쟁득에서 쟁은 ‘다툴 쟁’으로 보통 쓰이는데 여기서는 ‘어찌 쟁’으로 해석된다. 박비향에서 박은 ‘찌를 박’이다. 한 해가 가고 오는 이즈음 우리나라에도 한파가 몰아치다가 물러났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등장하고 있는 매화는 설중매(雪中梅)이다.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 불꽃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도 있다(火中生蓮).

황벽스님과 당나라의 재상인 배휴거사 사이에 오고간 법거량은 제법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배휴거사는 중국에서 경전이 편찬될 때 여기저기에 서문을 쓴 대학식가이자 수행에도 나름대로 자부하는 바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 배휴거사가 황벽스님이 주석하고 계신 절에 가서 법당에 들렸다. 법당에는 이 절에서 배출된 고승대덕들의 진영(眞影)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배휴거사는

“여기에 걸려있는 진영들은 다 세상을 떠난 분들이다. 진짜 살아있는 고승대덕은 어디 있는가.”
하고 그 절에 살고 있는 스님들을 애먹였다. 스님들이 참다 못해 황벽스님에게 알렸다.

황벽스님이 법당으로 직접 출동을 한다. 배휴거사가 황벽스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법당 밖으로 나가려 몇 걸음 걸었을 때 황벽스님이 뒤에서 큰소리로 배휴거사를 부른다.
“배휴야!”

배휴거사가 뒤돌아보는 순간 벼락이 떨어진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눈에서 불똥이 튀었는지 고막의 달팽이관이 요동을 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찰나에 배휴거사는 퍼뜩 알아차린 바가 있어 스님을 몹시도 존경했다고 한다. 황벽스님과 배휴거사 모두 코를 찌르는 법의 향기를 피워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뼛속을 후비고 지나가는 혹독한 시련이 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사회나 단체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굴리는 사람도 많고 뼛속을 후벼파는 추위 때문에 이 악물고 덜덜 떨면서 버티고 있는 사람도 많다. 1986년에서 1987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어느 절에서 하루에 삼천배씩 일주일 정진을 했었다. 3일째 되던 날 오후 쯤 오른발 복숭아뼈 바깥쪽이 조금씩 뜨끔거리더니 급기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엄습하려는 찰나 발목을 부여잡고 쉬려하는데 옆에서 느긋하게 절을 하고 있던 보살님이 가볍게 툭 던지듯이 한마디 했다.

 “거 아픈게 나을려고 하는 거예요. 꾹 참고 계속 절하면 풀립니다.”
 말대로 하니 정말 통증이 가라앉고 절하는 발목이 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 통증을 참느라 숨을 안으로 안으로 들이쉬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급해져서 해우소에 달려갔는데 닫혀있는 문 앞에 세 사람이나 줄 서있을 때 참을성이 바닥나는 것보다 더하게 들이 닥쳤던 발목의 아픈 추억과 보살님의 한 마디에 다시 일어서서 좌복에 엎드리고 일어서고 엎드리고 일어서는 동안에 그야말로 슬로모션처럼 가라앉았던 그 통증이 그립다.

모두 모두 건강하고 활기찬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 글: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 출처: 미디어조계사




· 감산덕청(憨山德清: 1546~1622/)
중국 명나라(1368~1644) 시대의 승려이다. 지금의 안후이 성(安徽省)에 속한 금릉의 전초(全椒)에서 태어났다. 속성(俗姓)은 채(蔡)이고 이름은 덕청(德清)이며 자는 징인(澄印)이다. 감산(憨山)은 호이며 일반적으로 감산대사(憨山大師)라고 존칭된다. 시호는 홍각선사(弘覺禪師)이다.

감산덕청은 염불과 간화선을 함께 닦았으며, 주굉(袾宏: 1536~1615) · 진가(眞可: 1543~1603) · 지욱(智旭: 1596~1655)과 더불어 명나라(1368~1644) 시대의 사대고승(四大高僧) 중의 한 명이라 칭해진다. 감산덕청은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여기에는 불교의 여러 종파에 걸친 저서들뿐만 아니라 유교 · 불교 · 도교의 3교의 조화를 추구한 저서들도 있다.

감산덕청은 11세에 출가의 뜻을 품고 불교의 경전과 논서와 유교의 문헌을 가까이 하였다. 19세때 출가하여 변융(辯融) · 소암(笑嚴) · 운곡(雲谷) 등 기타 많은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선풍(禪風)을 진흥함은 물론 여산에 초암(草庵)을 짓고 염불을 닦았다

감산덕청의 사상은 선과 화엄과의 융합에 핵심을 두고 있으며 이로써 여러 종파간의 조화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감산덕청의 저작으로는 《관릉가경기(觀楞伽經記)》 · 《법화경통의(法華經通義)》 · 《원각경직해(圓覺經直解)》 · 《기신론직해 (起信論直解)》 · 《감산노인몽유집(憨山老人夢遊集)》 등이 있는데 특정한 종파에 구애받지 않고 폭넓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중용직지(中庸直指)》 · 《노자해(老子解)》 · 《장자내편주(莊子內篇註)》 등을 저술했는데 이들은 모두 불교사상으로서 유교와 노장사상의 전적(典籍)을 해석한 것으로 유교 · 불교 · 도교의 3교의 조화를 추구한 3교조화사상이 나타나 있다. 《관노장영향론(觀老莊影響論)》(《삼교원류이론론(三敎源流異同論)》이라고도 한다)은 3교를 논한 것으로서 유명하며 3교의 다른 점과 같은 점에 대한 비교 검토를 통하여 조화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 출처


· 황벽희운(黃檗希運) (?~850)
법명은 희운(希運), 남악(南嶽)하(下) 4세(世).백장회해(百丈懷海)선사의 법을 이었다. 일찌기 출가하여 여러곳을 유력하였는 데 이마에 자그마한 혹이 돋혔고 음성이 우렁차고 키는 7척에 의기가 충담하였다고 한다.

천태산과 경사에서 배우다가 마조(馬祖)를 찾아가니 벌써 입적한 뒤였다.

그래서 법을 받은 제자인 백장(百丈)을 찾아 마조의 평일 기연(機緣)을 물었더니 말하기를"내가 한번은 방장에 들어가니 화상이 선상에 놓여있는 불자(拂子 )를 들어 보이기에 내가 "다만 그것뿐이지 딴 것이 있읍니까?"하니 화상이 불자를 도루 선상에 놓으시면서 "네가 이후에 후래를 가르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하겠느냐?"하시더라.

내가 그때 선상의 불자를 들어 보이니 말씀이 "다만 그것 뿐 딴 것이 있느 냐?"하기에 내가 불자를 도로 선상에 놓고 자리에 앉으려 하니 화상이 벽력 같은 "할"을 하셨는데 그때 내가 사흘이나 귀가 먹고 눈이 캄캄 하더라."하는 말에 황벽이 불각중에 토설(吐舌)하고 대오하였다.

하루는 백장이 묻기를

"어디를 갔다 오느냐?"

"대웅산 밑에 가서 버섯을 따옵니다."

"범을 안만났더냐? "

황벽이 "으흥!"하고 범이 물려는 형세를 지으니 백장이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는 것을 황벽이 덤벼들어 한번 쥐어박았다.

백장도 한 차례 쥐어박고 크게 웃으며 돌아갔다.

그날 백장스님이 상당설법에서 말하기를 "대웅산 아래 큰 범이 있으니 대중은 조심하라. 내가 오늘 한번 물렸다."하였다.

그 후 백장의 법을 받아 가지고 여러 곳으로 다니며 형적을 숨기고 지냈다.

한번은 용흥사(龍興寺)에 와서 쓰레질이나 하면서 머물고 있었는데 홍주자사 (洪州刺史)배휴(裵休)가 왔다.

배휴는 법당(영각인듯?) 벽 그림을 가리키며

"저것이 무엇이요?"

안내하는 스님이 "고승의 상(像)입니다."

"형상인즉 볼 만 하나 고승은 어데 있소?"

스님이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니,

배휴 "이 절에 선 승(禪僧)이 없소?"

"근자에 한 중이 와 있는데 선승같이 보입니다."

휴는 그 중을 불러오라 하였다.

바로 황벽이다.

휴는 다시 앞서의 말로 물으니 황벽이 즉시에 큰 목소리로 "배휴!"하고 불렀다.

휴는 엉겁결에 "네!"하니,

"어느 곳에 있는고?"하는데서 배휴가 활연 계합하였다.

휴는 그 자리에서 제자의 예를 드리고 사제에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였다.

그 후 배휴의 청으로 완능(宛陵)의 개원사(開元寺) 홍주 대안사(大安寺)에 있으면서 크게 교화하니, 법중이 항상 천여명이 넘었다.

법을 이은 제자가 12 인이 있는데 그중에 임제(臨濟)스님이 있다.

지금 여러 곳에서 성행하고 있는 완릉록(宛陵錄)과 전심법요(傳心法要)는 선사법어를 배휴가 기록한 것이다. 시호(諡號)는 단제(斷際)선사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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