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 보현보살장에서 보현보살이 부처님께 간절한 질문을 드린다.
世尊
세존
若彼衆生
약피중생
知如幻者
지여환자
身心亦幻
신심역환
云何以幻
운하이환
還修於幻
환수어환
세존이시여!
만약 저 중생들이
허깨비 같은 것인 줄 안다면
몸과 마음도 또한 허깨비인데
어떻게 허깨비를 가지고
다시 허깨비를 닦을 수 있겠습니까.
녹음이 한없이 짙어지고 있다. 가을되면 흔적도 없이 대부분 떨어져버릴 걸 저 나뭇잎들은 알고 있을까.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는 꽃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지인이 보내준 이메일에서 김용택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시의 제목은 '남쪽'이다.
여그, 남쪽이구만요.
뭔 꽃이 이런다요.
매화꽃도 피어 불고,
복사꽃도 피어 불고,
산수유꽃도 피어 불고,
내 마음도 덩달아 이리 지랄이고.
뭔 꽃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다 피어 분다요.
이 꽃들이 시방 제정신이 아니지라,
다 미쳤지라.
하하. 저 시인은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미칠 듯이 좋은 마음에 사로잡혀 있음이 틀림없다. 필자의 눈에는 초파일이 아직 좀 남아있는데 연꽃잎들이 매화꽃으로 위장해서 피어나기도 하고 산수유 꽃으로 위장해서 피어나고 복사꽃으로 피어나는 걸로 보인다. 나뭇잎들이 빚어내는 오케스트라 연꽃이, 연등이 짙어져가고 있는 녹음이다. 지금 저렇게 한창 피어나고 있지만 꽃은 나무를 떠나고 나무는 꽃을 버려야만 열매가 맺힌다.
꽃이 아름답기로 줄창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면 그 모양도 참 그렇다.
어느 큰 스님은 스승의 날에 한 제자가 종이로 만든 지화를 가슴에 꽂아드리면서 “스님, 이게 시들지 않는 꽃입니다.”하고 말씀드리자마자 대뜸 “그래? 시들지 않는 꽃이라고…, 그럼 그 꽃씨 좀 다오.” 역시 큰스님이신지라 꽃이 허깨비임을 금새 간파하신 것이리라.
우리가 애지중지 가꾸려고 드는 이 몸도 1초에 몇 백 개의 세포가 빠져나가고 동시에 몇백개의 세포가 새로 채워지면서 잠시 피어있는 꽃송이다. 나무에 피는 꽃보다는 좀 오래 머룰러 있긴 하지만 결국에는 시들어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서 어느날 홀연히 지고 만다. 차라리 백년 이쪽저쪽해서 지니 망정이지 수백 년 천년동안 지지 않고 계속 피어있으면 그것도 문제다. 비슷한 시기에 핀 인간 꽃들은 다 지고 없는데 자기 혼자만 천이백삼십년을 산다고 하면 소꿉친구도 없고 어쩌면 한참 허허로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한반도 우리 눈앞에서 녹음은 짙어지고 있고 그 짙어지는 녹음 위로 전기불 켜지는 연등도 걸릴 것이다.
若諸幻性
약제환성
一切盡滅
일체진멸
則無有心
즉무유심
誰爲修行
수위수행
云何復說
운하부설
修行如幻
수행여환
만약 모든 허깨비 성품
일체 모두가 소멸되어버리면
마음도 없을 것이니
누가 수행을 하며
또 어떻게 허깨비 같은
수행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중생을 대신해서 부처님께 질문을 해주시는 보현보살님께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신다.
善男子
선남자
一切衆生
일체중생
種種幻化
종종환화
皆生如來
개생여래
圓覺妙心
원각묘심
선남자야
일제 중생들의
갖가지 허깨비가 변화한 모습이
모두가 여래의 원각묘심에서
생겨난 것이니라.
어이쿠 다행이다. 허깨비를 낳아준 어머니가 부처님의 원각묘심이라니 이 아니 다행인가. 세간에서는 허깨비가 끊임없이 허깨비를 생산하기도 한다. 한 생각 오해가 또 얼마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가. 오해가 풀리고 나서 오해했던 내용을 돌아보면 소설책 몇 권이 되기도 하고 영화 몇 편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猶如空華
유여공화
從空而有
종공이유
幻華雖滅
환화수멸
空性不壞
공성불괴
비유하면 마치
허공의 허깨비 꽃이
허공을 의지해서 있는 것과 같으니
허깨비 꽃은 떨어져 없어져도
허공의 성품은 무너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그렇다고 허공에 집착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 몸이 허깨비 꽃인 줄 모르고 잔뜩 집착하면서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고무줄을 놓아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실 뿐이다. 때로는 붙잡고 있어야 하는 줄을 놓아버리는 수도 더러 있다.
어떤 젊은이가 산길을 가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벼랑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래도 정신줄은 놓지 않아서 몇 미터 내려가다가 칡덩굴을 붙잡고 안간힘을 다해 매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가 흙이 갑자기 패여 나간 흔적을 발견하고 벼랑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젊은이가 죽을힘을 다해서 칡덩굴에 매달린 채로 이리저리 애를 쓰고 있다. 등에 지고 있는 튼튼한 밧줄을 풀어서 젊은이에게 내려 주었다. 젊은이는 감사합니다면서 밧줄을 잡고 한발 두발 올라오기 시작했다.
벼랑위에서 밧줄을 붙잡고 끌어올렸으나 손바닥에서는 어느새 피가 줄줄 흐른다. 손가락이 끊어질 듯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으니 아프다고 내색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겨우겨우 올라오고 있던 젊은이의 뇌리에 퍼뜩 한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운동회 때 줄다리기를 하다가 양쪽이 팽팽하게 줄을 당길 때 한쪽에서 갑자기 줄을 탁 놓으면 저쪽편의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지는 그림이 떠오른 것이다. 젊은이가 줄을 탁 놓았다고 한다. 그 이후 이야기는 생략한다.
衆生幻心
중생환심
還依幻滅
환의환멸
諸幻盡滅
제환진멸
覺心不動
각심부동
중생의 허깨비 마음도
다시 허깨비를 의지해서
소멸시키는 것이니
모든 허깨비가 사라지면
각심은 요동치는 것이 아니니라.
요즘에 꽃 진다고 서러워하는 사람도 없다. 지거나 말거나 연꽃등을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피워 올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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