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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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이라 불린 빔비사라 왕


▲ 라자가하의 거리를 걷고 있는 수행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한 빔비사라 왕은 신하를 시켜 그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오도록 하였다. 수행자의 뒤를 쫓아간 신하는 그가 산 속의 바위동굴에서 선정에 빠진 것을 보고 왕에게 알려주었다. 보고를 받은 빔비사라 왕은 곧바로 말을 달려 수행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 수행자는 바로 이제 막 출가한, 아직 깨달음을 얻기 전의 부처님이었다. 이것이 바로 평생에 걸쳐 깊은 우정을 쌓아온 빔비사라 왕과 부처님의 첫 만남이었다. 부처님의 고향은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작은 나라 카필라이다. 카필라는 ‘석가’ 성을 가진 왕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나라였다. 부처님은 바로 이 카필라에서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났다. 만약 부처님이 석가족의 평범한 왕자였다면 출가의 어려움이 그토록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석가족의 번영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 정반왕의 장남이었다. 정반왕은 사랑하는 아들이 훌륭한 왕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부처님은 육신의 안락함이 보장된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 길에서 만난 첫 번째 왕이 바로 빔비사라 왕이다.


전륜성왕이라 불린 빔비사라 왕


2016년 01월 04일 (월)


1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맹한 왕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왕으로 부처님과 평생에 걸쳐 우정을 주고받으며 교단을 보호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빔비사라 왕의 보호 속에서 부처님은 마음껏 가르침을 펼칠 수 있었고 부처님과 교단의 명성은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렇다면 과연 빔비사라 왕은 어떤 인물이며 왜 부처님과 교단의 보호를 자청하게 되었을까?

 부처님 당시 인도는 통일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16개의 강대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빔비사라 왕은 그 중 북인도의 강대국인 마가다 국의 왕이었다. 샤이슈나가 왕조의 다섯 번째 왕으로 15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빔비사라 왕은 마가다 국을 북인도의 강대국으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마가다 국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앙가 국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본디 마가다 국은 앙가 국에 비하여 약소국으로 두 나라는 오랫동안 전쟁과 갈등을 반복해온 관계였다. 이때 새로 즉위한 빔비사라 왕은 앙가 국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를 직접 이끌었고 마침내 앙가 국의 마지막 왕의 목을 베고 수도 참파를 장악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앙가 국은 멸망하였고 영토는 마가다 국에 병합되었다.

 이로써 빔비사라 왕은 영웅으로 떠올랐고 마가다 국은 북인도의 강대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후 빔비사라 왕은 수도를 라자가하(왕사성)로 옮기고 그곳에 커다란 왕궁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빔비사라 왕과 부처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길을 걷고 있던 수행자에게 한 눈에 반한 빔비사라 왕

 재위 10년을 맞은 빔비사라 왕은 어느 날 아침, 새로 지은 왕궁 창가에서 라자가하의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거리를 걷고 있는 한 출가수행자가 빔비사라 왕의 눈에 들었다. 빔비사라 왕은 논사들을 특히 우대하였는데 소문을 들은 당대 최고의 사상가들이 앞다투어 라자가하를 찾았다. 이들은 빔비사라 왕의 보호 속에서 교단을 만들었고 그들을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다. 즉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출가수행자를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빔비사라 왕은 단지 거리를 걷고 있을 뿐인 출가수행자에게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자신도 모르게 신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저 사문을 보아라. 얼굴도 수려하고 체격도 훌륭하며 표정과 안색도 편안하고 아름답다. 품위 있는 걸음걸이로 마음을 집중하여 앞만 보고 걷는다. 아마도 천한 가문 출신이 아닐 것이다. 저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 보거라.”

 빔비사라 왕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출가수행자는 탁발을 위해 거리에 나온 부처님으로 아직 깨달음을 얻기 전이었다. 왕의 명에 따라 거리로 나온 신하는 탁발을 마친 부처님을 뒤따라갔고 산 속의 동굴 앞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왕궁으로 돌아온 신하는 빔비사라 왕에게 부처님이 계신 곳을 알려주었고 빔비사라 왕은 곧바로 마차를 타고 부처님이 계신 동굴로 향했다.



빔비사라 왕의 첫 번째 제안

 오랜 숙적이었던 앙가를 정복하고 수도까지 옮긴 빔비사라 왕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용맹하고 현명하였으며 백성들의 사랑과 신하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빔비사라 왕은 전쟁이나 정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통치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 나라를 잘 다스려줄 훌륭한 인재를 간절하게 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길을 걷고 있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해 그가 머무는 동굴까지 한 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동굴 앞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부처님을 본 빔비사라 왕은 그가 자신이 찾던 인재라고 확신했다. 빔비사라 왕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젊은 수행자여, 당신은 아직 청춘이며 인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당신은 용모도 아름다우며 매우 훌륭한 혈통을 지닌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왕궁의 보물과 코끼리 부대가 호위하는 위풍당당한 군대를 맡기고 싶습니다. 이것을 모두 선물로 드리니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태생이 궁금합니다.”



권력의 길을 거부한 부처님

 마가다 국은 카필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강대국이었고 빔비사라 왕은 마가다 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인물이었다. 바로 그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에게 보물과 군대를 선물할 테니 함께 나라를 다스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고 이처럼 엄청난 제안을 한 것일까? 하지만 빔비사라 왕의 매혹적인 제안을 들은 부처님은 고요한 얼굴로 거절하였다.

 “왕이시여, 히말라야 기슭에 작은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은 부유함과 용맹함을 갖춘 종족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코살라의 속국인 그곳을 다스리는 이들은 태양의 후예라고 불리는 석가족 입니다. 저는 그 가문에서 태어나 수행자가 되기 위해 출가를 하였습니다. 저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욕망에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오직 깨달음을 구할 뿐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빔비사라 왕의 두 번째 제안

 당시 빔비사라 왕은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였고 코살라 국의 영토였던 ‘바라나시(카시)’를 노리고 있었다. 따라서 마침 코살라 국의 속국인 카필라의 왕족 출신인 부처님을 만났을 때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빔비사라 왕이 보물과 군대를 줄 테니 나라를 함께 다스리자고 제안한 것은 부처님의 출신과 태생을 알기 전이다. 그렇다면 빔비사라 왕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부처님께 이처럼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일까?

 단지 용모가 훌륭하고 태도가 우아하여 한 눈에 반했던 것일까? 만나보니 혈통까지 훌륭한 것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이미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에게 매료되었고 이것은 평생에 걸친 우정의 시작이 되었다. 거절의 대답을 들은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의 뜻을 존중해주었고 정치적 동반자가 되는 것을 깨끗하게 단념했다. 대신 부처님에게 두 번째 제안을 하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당신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라자가하로 와서 나에게 설법을 해 주십시오.”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깨끗하게 포기하는 대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면 제자가 되겠다고 말한 것이다. 거절에 대한 빔비사라 왕의 대응과 태도는 실로 훌륭했다. 왕족 출신이었던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의 현명함을 바로 이 순간 꿰뚫어보았을 것이다. 부처님은 기쁜 마음으로 왕의 두 번째 제안을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빔비사라 왕과 부처님과의 깊은 인연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때 빔비사라 왕의 나이 스물다섯, 부처님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결혼지참금으로 카시(바라나시)를 가져온 코살라 국의 데비 공주

 부처님의 만남 이후 빔비사라 왕은 경쟁관계였던 코살라 국과 전쟁을 하는 대신 평화협정을 맺었다. 코살라 국의 마하코살라 왕의 딸 ‘데비’ 공주를 왕비로 맞은 것이다. 마하코살라 왕은 데비공주의 결혼지참금으로 빔비사라 왕에게 카시(바라나시) 지방을 선물했다. 빔비사라 왕은 이 결혼으로 훌륭한 혈통을 지닌 왕비를 얻었고, 전쟁 없이 원하는 영토를 차지했으며 코살라 국을 돈독한 동맹이자 우호국으로 만들었다. 지혜로운 빔비사라 왕에 대한 칭송은 더욱 높아졌다.

 빔비사라 왕이 다스리는 동안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는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번영을 거듭하며 인도 제일의 도시로 떠올랐다. 또한 빔비사라 왕의 보호 속에서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허용된 라자가하에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러자 그들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라자가하는 다른 왕들과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점점 번창하였다. 라자가하를 찾은 사람들 중에는 훗날 육사외도라 불리게 되는 유명한 사상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빔비사라 왕의 나이가 서른을 넘도록 아직 부처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계자를 얻지 못한 빔비사라 왕과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

 빔비사라 왕이 왕위에 오른 지도 어느덧 15년이 흘렀다. 홍안의 소년이었던 군주는 이제 간절하게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바라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제1왕비인 ‘데비’ 공주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다. 이에 빔비사라 왕은 왕족 출신에 절세의 미모로 소문이 자자한 ‘케마’를 두 번째 왕비로 맞았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케마는 왕비가 된 후 빔비사라 왕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한편 그 무렵 6년간의 고행으로 쇠약해진 부처님은 지나친 고통을 통한 수행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통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산에서 내려와 우루벨라 마을로 간 부처님은 강에서 목욕을 했다. 6년 만에 목욕이었다. 목욕을 마친 부처님은 소녀 수자타가 올린 우유죽을 드시고 기력을 차렸다. 그리고 7일간의 정진 끝에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스스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은 다시 우루벨라에서 사르나트의 녹야원까지 200㎞가 넘는 길을 걸어갔다. 6년 동안 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르나트의 녹야원에 도착한 부처님은 첫 설법을 하였다. 설법은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모두 깨달을 때까지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부처님 외에 다섯 명의 아라한이 탄생하였다. 이것을 초전법륜이라고 한다. 또한 이것은 교단의 탄생이기도 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이를 따르는 출가스님들까지 삼보를 갖춘 승가가 녹야원에서 탄생한 것이다.





▲ 빔비사라 왕이 보낸 자객이 선인을 살해하려 하고 있다. 선인은 자신의 생명이 3년 밖에 남지 않았으니 3년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왕자를 얻고 싶었던 빔비사라 왕은 그를 죽였다. 선인의 생명이 다하면 빔비사라 왕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는 점술가의 예언 때문이었다. 선인은 원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빔비사라 왕은 그 동안 쌓아온 수많은 선행과 공덕 덕분에 좋은 왕자를 얻을 기회가 주어졌으나 단 3년을 참지 못하여 그 기회를 스스로 망가뜨린 것이다. 



2016년 02월 01일 (월)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사르나트의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였다. 그리고 다섯 명의 제자를 얻었다. 깨달으신 분, 부처님과 부처님이 깨달은 바른 진리, 법과 부처님과 바른 진리에 귀의한 출가 제자, 이를 불법승(佛法僧) 즉, 세 가지 보배라고 한다. 교단이 탄생한 것이다. 출가에서 교단의 탄생까지는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가섭 3형제의 교화

부처님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마가다 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다. 자신이 깨달은 위없는 바른 진리를 빔비사라 왕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부처님은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에 가기 전, 가섭 3형제를 먼저 만났다. 불을 섬기는 가섭 3형제는 우루웰라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존경받는 인물들이었다. 형제 중 첫째는 우루웰라 숲에서 머물며 5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둘째는 네란자라 강가에서 3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셋째는 강 하류의 가야 지역에서 200명의 제자를 이끌고 있었다.

부처님은 먼저 첫째인 우루웰라의 가섭을 만나 그를 제도하였다. 백발의 가섭은 오랜 세월 불의 신을 위해 사용해왔던 제사용품들을 모두 네란자라 강에 버리고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어서 가섭의 동생들과 그들의 제자들도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명망 높은 가섭 3형제를 제도한 부처님에게는 1천명의 새로운 제자들이 생겨났다. 부처님은 이들과 함께 마가다 국으로 향했다.



빔비사라 왕과의 재회

부처님이 라자가하 근처에 도착했을 때, 가섭은 빔비사라 왕을 만나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이야기했다. 빔비사라 왕은 깜짝 놀랐다. 6년 전, 자신이 만났던 그 수행자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는 것에 놀랐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온 가섭3형제와 그들의 제자들이 모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한시라도 빨리 부처님을 뵙고 싶었던 빔비사라 왕은 그 길로 신하들과 함께 부처님이 계신 곳을 찾아갔다.

부처님께서는 1천 명이 넘는 제자들과 함께 숲 속에 고요히 앉아 계셨다. 한 눈에 부처님이 6년 전 자신이 만난 수행자라는 것을 알아본 빔비사라 왕은 수레에서 내려 두 발로 걸어갔다. 왕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부처님 곁에 가섭 형제들이 있는 모습을 보고 술렁였다. 당시에는 명성이 높은 수행자일수록 고행의 흔적이 역력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들의 눈에는 가섭 형제들이 훨씬 더 ‘깨달은 수행자’의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부처님은 너무나 젊고 건강하며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빔비사라 왕은 지체 없이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신하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나머지 의문을 가득 품은 채 서로를 향해 속삭였다.

“도대체 어느 분이 스승이고 어느 분이 제자란 말인가? 저 젊은 사문과 오랫동안 존경받아온 가섭 3형제는 무슨 사이인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의혹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안 가섭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해 예배를 올리며 말했다.

“부처님, 거룩하신 부처님께서는 저의 스승이시며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빔비사라 왕의 다섯 가지 소원

가섭이 부처님께 예배를 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이 날 부처님은 약속대로 빔비사라 왕을 위해 당신이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진리를 설하셨다. 법문을 들은 빔비사라 왕은 수다원과를 성취하였고 감격과 환희에 젖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때서야 부처님이 가섭 3형제의 스승이라는 것을 온전하게 인정하였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마치시자 빔비사라 왕은 다시 한 번 예배를 올리며 말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제가 세웠던 모든 소원을 성취하였습니다. 제 첫 번째 소원은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제 두 번째 소원은 제가 다스리는 나라에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이 오시는 것이었고 세 번째 소원은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으며 네 번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었고 마지막 다섯째 소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다섯 가지 소원을 다 이루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왕 중에서는 처음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빔비사라 왕의 귀의로 인하여 부처님의 명성은 널리 퍼졌고 부처님이 계신 도시, 라자가하는 수많은 수행자들이 찾는 인도 최고의 도시가 되었다.



죽림정사의 탄생과 케마 왕비의 출가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과 스님들이 머무실 장소를 찾았다. 이때 칼란다 장자가 자신이 가진 대나무 정원을 부처님께 바쳤다. 왕궁에서 멀지 않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조용한 정원이었다. 그러자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과 스님들이 불편함 없이 생활하실 수 있도록 건물을 짓고 정원을 꾸몄다. 정원 곳곳에 스님들이 목욕을 할 수 있는 연못이 만들어졌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들도 심어졌다. 교단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가 탄생한 것이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죽림정사는 그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 후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의 법문이 울려퍼지는 죽림정사를 수시로 찾았고 법문을 듣거나 부처님을 뵙고 또는 스님들을 보고 교단에 귀의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빔비사라 왕은 자신의 나라에 작은 불국토를 만든 것이다. 부처님과 교단을 향한 빔비사라 왕의 헌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름다운 왕비 케마의 출가를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황금가마를 내려주었다. 케마 왕비의 출가는 빔비사라 왕의 축복과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마치 축제처럼 이루어졌고 부처님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이처럼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과 교단을 위해 걸림 없이 아낌없이 보시를 하였다. 빔비사라 왕이 쌓은 보시의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보시를 통해 그가 느낀 기쁨과 보람 또한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컸다.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때마다 빔비사라 왕의 지혜와 총명은 더욱 맑아졌고 마가다 국의 백성들은 불국토를 살아가는 행복을 만끽했다. 백성들은 빔비사라 왕을 전륜성왕이라 칭송하였고 마가다 국은 점점 더 번영하였다. 하지만 세속을 살아가는 빔비사라 왕에게는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후계자 문제였다.



베데히 공주와의 혼인과 점술가의 예언

빔비사라 왕에게는 많은 후궁들이 있었지만 후계자는 후궁이 아닌 왕비의 아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왕비인 데비 공주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고, 케마 왕비는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는 동안 빔비사라 왕의 나이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을 넘어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조해진 왕은 베데히 성 출신의 공주를 세 번째 왕비로 맞았다. 베데히 왕비는 훌륭한 혈통을 지녔고 아름다웠으며 젊고 건강했다. 빔비사라 왕은 그녀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아들을 얻고 싶었다.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 또한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여 초조해하였고 부처님을 잉태하기 전 마야 왕비는 100일 동안 신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아들을 기다리는 빔비사라 왕의 마음도 아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바라문 사제들과 점술가, 예언가들을 불러 언제쯤 아들을 얻을 수 있는지 점을 쳐보도록 하였다. 미래를 읽은 점술가가 왕에게 고했다.

“왕자는 3년 후에 태어날 것입니다. 라자가하에서 멀지 않은 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해온 선인이 있는데 그의 수명이 3년이 남았습니다. 그가 수명을 다하고 나면 대왕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며 베데히 왕비에게 태기가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점술가는 청정하게 수행을 해온 선인이 죽어 왕자로 태어나면 선근이 깊고 훌륭한 군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왕자를 얻기 위한 욕심

빔비사라 왕은 베데히 왕비에게서 왕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말에 마음을 놓았으나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하게 왕자가 태어나길 바라왔는데 지금부터 다시 3년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빔비사라 왕은 어차피 왕자의 탄생이 예정된 운명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25년 넘게 마가다 국을 다스려온 빔비사라 왕은 현명하고 영민한 군주였다. 하지만 왕자를 얻을 욕심에 사로잡힌 빔비사라 왕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왕은 은밀하게 신하를 불러 명했다.

“자객을 보내 선인을 살해하라. 그가 죽어야 베데히 왕비가 왕자를 잉태할 것이다. 선인이 죽는 것을 확인하고 온 후 나에게 보고하라.”

자객을 보내기 전, 한 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그토록 고민이 깊었다면 부처님을 찾아뵙고 지혜와 조언을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 또한 빔비사라 왕의 운명이었다.



선인의 저주

선인이 머물고 있는 산에 도착한 자객은 가슴에 숨겨온 검을 꺼내들었다. 자객을 본 선인은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한 눈에 알아보고 놀라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3년 후면 나의 목숨은 이 육신을 떠나게 된다오. 그때 왕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니 3년만 기다려 달라고 왕에게 전해주시오.”

하지만 선인의 말을 들은 후에도 자객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선인은 조금도 저항을 하지 않았기에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선인의 몸에서 붉고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숨이 끊어지기 전 선인은 원망과 증오가 가득한 얼굴로 자객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3년만 기다리면 될 것을 왕은 처음부터 나를 죽일 생각이었구나. 마음으로 나를 죽일 생각을 품었고 입으로 나를 죽이라고 명하였구나. 돌아가서 왕에게 전하라. 내가 만약 왕의 아들로 태어난다면 그를 살해할 마음을 품을 것이며 기어이 그를 내 손으로 죽일 것이다.”

이 말을 끝으로 선인은 숨이 끊어졌다.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한 자객은 궁으로 돌아와 왕에게 고했다. 선인이 죽었다는 이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빔비사라 왕은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죽기 전에 선인이 남긴 말이 있느냐?”

왕의 물음에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자객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저를 보자마자 왕께서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말하길, 자신이 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된다면 왕을 죽이겠다고 하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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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기(칼럼니스트) gorah@naver.com
삽화 : 견동한 화백


· 작가 소개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였다. 영화사를 거쳐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외조 - 성공한 여자를 만든 남자의 비결>가 있으며 현재 세계일보에 <꽃미남 중독>과 <외조의 기술>을 연재중이다.

 한 사람의 불자(佛子)이자 여자로써 또 꽃미남 애호가이자 전문가로써 2500여년 불교 역사에 존재해 왔던 멋진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발원 끝에 좋은 인연을 만나 조계사 홈페이지에 <경전 속 꽃미남>을 연재하게 되었다.

 <경전 속 꽃미남>은 21세기 재가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를 초월하는 멋진 남성에 대한 이야기로 불자(佛子) 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에게 긍정적이고도 즐거운 귀감을 줄 것이다.


· 미디어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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