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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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Sutta-Nipata)] 큰 장 2




숫타니파타(Sutta-Nipata)

큰 장

출가
정진
훌륭하게 말해진 것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카
젊은 마가의 물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
바라문 세라
화살
젊은이 바셋타
비난하는 사람 코칼리야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두 가지 관찰





화살

574.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를 살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삶은 애처롭고 짧으며 고뇌로 엉켜 있다.


575.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찾아 온다.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실로 이런 것이다.


576.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진다. 그와 같이 한번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577.
이를테면 옹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마침내는 모두 깨어지고 말 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러하다.

578.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하고 만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579.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580.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사람들은 하나씩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581.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이것의 참 모습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582.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양쪽 끝을 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583.
어리석음에 붙들려 자기 몸을 해치는 사람이 슬피 울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지혜로운 사람도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584.
슬피 우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다만 괴로움만 깊어지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585.
괴로워할수록 몸은 여위고 추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므로 슬피 우는 것은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다.


586.
슬픔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괴로워질 뿐이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은 슬픔에 사로잡힌 것이다.


587.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또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은가.


588.
사람들이 어떤 것을 희망할지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보라, 세상의 저 모습을!


589.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결국은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버리게 된다,


590.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에게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591.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버리듯,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


592.
진정한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593.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간 자가 될 것이다.



젊은이 바셋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계셨다. 그때 재산이 많고 유명한 바라문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 있었다. 즉 찬킨 바라문, 타루카 바라문, 폭카라사티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토데야 바라문, 이밖에 저명한 바라문들이었다.

그 때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고 하는 두 젊은이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거닐면서 논쟁을 벌였다.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

바라드바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이 다 칠 대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을 받은 일이 없는 순수한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다.”

바셋타는 말했다.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바라문입니다.”

바라드바자는 바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바셋타도 바라드바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셋타는 바라드바자에게 말했다.

“바라드바자여,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사문 고타마에게 가 봅시다. 거기 가서 그분에게 이것을 물어 봅시다. 그의 대답에 따라 그것을 믿읍시다.”

그들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바셋타 바라문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께 여쭈었다.



594.
“우리 두 사람은 3베다의 학자라고 스승도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폭카라삿티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루카의 제자입니다.


595.
3베다에 씌여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다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했고 독송도 스승에게 견줄 만 합니다.


596.
고타마시여 그러한 우리가 태생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바라드바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이런 사정임을 알아 주십시오.


597.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 뜬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598.
사람들이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고 절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타마를 향해 절합니다.


599.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타마께 우리는 묻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600.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셋타여, 그대들을 위해 모든 생물에 대한 구별을 설명해 주리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은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1.
풀이나 나무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는 풀이다’라든가 ‘우리는 나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2.
또 구더기나 귀뚜라미로부터 개미에 이르는 것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3.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네 발 달린 짐승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4.
배로 기어 다니는 길이가 긴 것들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5.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6.
그리고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새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7.
이와 같이 생물에 있어서는 태생에 다른 특징이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사람에게는 그 특징이 다를 수 없다.


608.
머리카락이나 머리, 귀, 눈, 코, 입술이나 눈썹에 대해서도,


609.
목이나 어깨, 배, 등, 엉덩이, 가슴, 음부에 대해서도,


610.
손이나 발, 손가락, 손톱, 종아리, 허벅지, 피부색이나 음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물처럼 태생에 따른 특징의 구별이 사람에게는 결코 없다.


611.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뿐이다.


612.
인간 가운데서 소 치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농부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3.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기술자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4.
인간 가운데서 사고 파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상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5.
인간 가운데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고용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6.
인간 가운데서 훔친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도둑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7.
인간 가운데서 무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무사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8.
인간 가운데서 제사 지내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제관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9.
인간 가운데서 마을이나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왕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20.
나는 바라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그대여, 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무엇인가 소유물에 걸려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1.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움이 없으며, 집착을 초월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2.
고삐와 함께 가죽 끈과 가죽 줄을 끊어 버리고 어리석음을 없애 눈을 뜬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3.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굳센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4.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잘 다스려 ‘최후의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5.
연꽃 위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6.
이 세상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7.
지혜가 깊고 현명하며 온갖 길에 통달해 최고의 목적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8.
재가자나 출가자 누구하고도 섞이지 않고, 집 없이 두루 다니며 욕심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9.
힘세거나 약한 어느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도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0.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하며, 집착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1.
겨자씨가 송곳 끝에서 떨어지듯이, 집착과 증오와 오만과 거짓을 털어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2.
거칠지 않고 사연을 전하는 데 진실한 말을 하며 말로써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3.
이 세상에서 길거나 짧거나, 가늘거나 굵거나,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갖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바라문이라 부른다.


634.
현세도 내세도 바라지 않고, 욕심도 걸림도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5.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고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6.
이 세상의 재앙이나 복과 덕,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심과 티가 없이 깨끗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7.
구름에 가리지 않은 달처럼, 깨끗하고 맑아 환락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8.
이 힘들고 어려운 길, 윤회와 헤맴을 넘어 피안에 이르고, 깊이 명상하여 욕망도 집착도 없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9.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0.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1.
인간의 인연을 끊고 천상의 인연도 끊어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2.
쾌락도 쾌락 아닌 것도 버리고, 맑고 깨끗해져 얽매임 없이 세상을 이겨낸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3.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의 생사를 알고 집착 없이 행복한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4.
신도 귀신(간다르바)도 인간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번뇌의 더러움을 씻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5.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단 하나의 물건도 갖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6.
황소처럼 늠름하고 기품 있는 영웅, 위대한 성자, 도의 승리자, 욕망 없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7.
삶의 모든 일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보며 생존을 멸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8.
세상에서 쓰는 이름이나 성은 부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는 그때마다 임시로 붙여지는 것이다.


649.
이름이나 성이 임시로 붙여진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그릇된 선입견을 오래 가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된다’고.


650.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651.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되며,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652.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653.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654.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 마치 달리는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이.


655.
고행과 청정한 수행과 감각의 절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


656.
지식인들이 볼 때 3 베다를 갖추고 마음이 편안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범천이며 제석천이다. 바셋타여, 이러한 줄을 알아라.“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바셋타와 바라드바자 청년은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비난하는 사람 코칼리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수행자 코칼리야는 스승께 가가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절한 뒤, 한쪽으로 가서 앉아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승은 수행자 코칼리야에게 일렀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칼리야는 거듭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은 다시 수행자 코칼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칼리야는 세 번째로 말씀 드렸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세 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그들을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자 수행자 코칼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절하고 바른쪽으로 돌아 나가버렸다. 그는 나가자마자 온 몸에 겨자씨만한 종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겨자씨만하던 것이 차차 팥알만해졌다. 팥알만하던 것이 또 콩알만해졌다. 그러더니 대추씨만해지고 대추알만해졌다. 이와 같이 감자만해지고 덜 익은 모과 열매만해지고 익은 모과만하던 것이 마침내 터져서 고름과 피가 되어 흘렀다. 코칼리아는 마침내 그 병 때문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한밤중이 지났을 무렵, 아름다운 얼굴로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린 뒤, 한쪽에 서서 말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자 코칼리야는 죽었습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자 코칼리야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이렇게 말하며 스승께 절하고 바른편으로 돌아 사라졌다.

날이 밝자 스승은 여러 수행자에게, 어젯밤에 범천이 왔던 일을 말씀하셨다. 그때 한 수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홍련 지옥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수행자여, 홍련 지옥의 수명은 길다, 그것을 몇 년이라든가, 몇 백 년, 몇 천 년, 몇 만 년이라고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그렇지만 비유로써 설명하실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렇게는 말할 수 있다.”
하시면서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수행자여, 이를 테면 코살라국의 말로 되어서 스무 카리카(한 수레분)의 깨가 있는데, 그것을 꺼낸다고 하자. 한 사람이 백 년마다 한 알씩 꺼내는 방법으로 스무 카리카의 깨를 다 꺼낸다하면 그것이 한 압부다 지옥이다. 그리고 스무 압부다 지옥은 한 니랍부다 지옥과 같다. 또 스무 니랍부다 지옥은 한 아바바 지옥이며, 스무 아바바 지옥은 한 아하하 지옥, 스무 아하하 지옥은 한 아타타 지옥이며, 스무 아타타 지옥은 한 황련 지옥과 같으며, 스무 황련 지옥은 한 백수련 지옥과 같으며, 스무 백수련 지옥은 한 청련 지옥, 스무 청련 지옥은 한 백련지옥, 스무 백련 지옥은 한 홍련 지옥에 해당된다. 수행자들이여, 그런데 코칼리야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홍련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인 스승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657.
사람이 태어날 때는 그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욕설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658.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또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입으로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659.
도박으로 재산을 잃은 자는,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 불행이 오히려 적다. 그러나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는 사람의 죄는 아주 무겁다.


660.
나쁜 말 또는 나쁜 뜻을 가지고 성인을 비방하는 사람은, 십만 삼십육 니랍부다 지옥과 압부다 지옥에 떨어진다.


661.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똑같이 지옥에 떨어진다.


662.
남을 해칠 마음이 없고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나쁜 과보가 되돌아온다. 바람을 거슬러서 먼지가 날아오는 것처럼.


663.
여러 가지 탐욕에 빠져 믿음도 없고 인색하며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며 이간질을 하는 사람은 말로써 남을 때리는 것과 같다.


664.
입이 더럽고 불성실하며 천한 자여, 산 것을 죽이고 사악한 행위를 하는 자여, 야비하고 불량하며 덜된 자여,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그대는 지옥에 떨어지리라.


665.
그대는 먼지를 뿌려서 세상을 더럽히고 착한 사람들을 비난하여 죄를 지으며 온갖 나쁜 일을 하여 오랫동안 깊은 구렁(지옥)에 빠진다.


666.
그 어떤 업도 그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그 임자에게 되돌아온다.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저 세상에서 그 괴로운 죄가를 받는다.


667.
지옥에 떨어진 자는 쇠꼬챙이에 꿰이고, 날카로운 철창에 찔린다. 또한 불에 달군 쇳덩이를 속세에서 지은 업만큼 먹어야 한다.


668.
지옥의 옥졸들은 ‘잡아라!’ ‘때려라!’ 소리칠 뿐 부드러운 말을 하지 않으며 상냥한 얼굴로 대해 주지 않고 의지가 되어 주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자는 숯불 위에 앉아야 하며 뜨거운 불길 속에 들어가야 한다.


669.
또한 지옥의 옥졸들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철망에 몰아넣은 후 쇠망치로 내려친다. 그리고 새까만 암흑 속에 가두는데, 그 어둠은 안개처럼 끝없이 퍼져 있다.


670.
또 다음에는 펄펄 끓어오르는 가마솥에 들어가야 한다. 오랫동안 그 끓는 가마솥 안에서 삶기면서 몸은 떴다 가라앉았다 한다.


671.
피고름이 가득 찬 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속에서 삶긴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피고름 때문에 더럽혀진다.


672.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가마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안에서 삶긴다. 나오려 해도 붙잡을 것이 없다, 그 솥은 안으로 굽고 둘레가 모두 한결같기 때문이다.

673.
날카로운 칼날로 된 숲이 있어, 지옥에 떨어진 자는 그 속에서 팔다리가 잘린다. 지옥의 옥졸들은 꼬챙이로 혀를 꿰어 잡아당기면서 괴롭힌다.


674.
또 지옥에 떨어진 자는 예리한 면도칼이 흐르는 베다라니강에 이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그곳에 떨어진다.


675.
그곳에는 검은 개와 늑대와 여우들이 있어 울부짖는 사람들을 뜯어먹는다. 또 독수리와 까마귀들도 살을 쪼아먹는다.


676.
죄를 지은 자가 살아야 하는 지옥에서의 삶은 실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고 헛되이 지내지 말아야 한다.


677.
홍련 지옥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수레에 실은 깨알의 수만큼 된다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헤아렸다. 즉 그 햇수는 오조 년과 오천만 년이다.


678.
그 기간 동안은 여기서 말한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 지옥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맑고 깨끗하고 어질고 착한 미덕을 위해 항상 말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679.
아시타 현자는 한낮의 휴식 때에,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서른 명이나 되는 신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옷을 벗어 흔들며 제석천을 극구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680.
기뻐서 뛰노는 신들을 보고 현자는 조심스레 물었다.
“신들이 기뻐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왜 당신들은 옷을 벗어 흔들고 있습니까?


681.
만일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할지라도 몸의 털을 곤두세울 만큼 그토록 기뻐할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떤 희귀한 일이 있기에 그처럼 기뻐하고 있습니까?


682.
당신들은 소리 높여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당신들께 묻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제 궁금증을 어서 풀어 주십시오.“


683.
신들은 대답했다.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보배인 저 보살이 모든 사람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 인간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석가족 마을 룸비니 동산에.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684.
무릇 살아 있는 자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사람, 가장 높은 사람, 황소 같은 사람이, 머지않아 성인들이 모이는 숲에서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용맹스런 사자가 다른 모든 짐승들을 제압하고 포효하듯이.“


685.
현자는 그 말을 듣고 급히 안간 세계로 내려왔다. 그리고 숫도나다 왕의 궁전에 가서 석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한 번 뵙고 싶습니다.”


686.
그리하여 석가족의 사람들은 솜씨 좋은 금세공이 만든 황금처럼 반짝이며 행복에 빛나는 거룩한 아기의 얼굴을 아시타 현자에게 보였다.

687.
불꽃처럼 빛나고 하늘의 달처럼 밝으며 구름을 헤치고 비치는 가을 태양처럼 환한 아기를 보고 아시타 현자는 환희에 넘쳐 몹시 기뻐했다.


688.
신들은 천 개의 둥근 고리가 달린 양산을 공중에 펼쳤다. 또 황금자루가 달린 불자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689.
아시타 현자는 얼굴을 흰 양산으로 가리고 빨간 담요에 싸여 있는 황금 보물 같은 아기를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690.
관상과 베다에 통달한 그는, 황소같이 훌륭한 석가족의 아기를 안고 그 남다른 상을 살피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이 아기는 최고로 뛰어난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합니다!”


691.
그러더니 현자는 자기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현자가 우는 것을 보고 석가족의 사람들은 물었다.


692.
석가족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현자는 말했다.
“왕자에게 어떤 불길한 상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분은 평범한 상이 아닙니다. 정성껏 길러 주십시오.


693.
이 왕자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이 아기는 가장 으뜸가는 맑고 순수함을 볼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그들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덕행은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694.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내 삶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내게는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나는 비할 데 없이 큰 힘을 가진 이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695.
청정한 수행자 아시타 현자는 석가족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고 궁전을 떠나갔다.


696.
“네가 나중에 ‘눈 뜬 사람이 깨달음을 펴고 진리의 길을 간다.’는 말을 듣거든, 그때 그곳으로 가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그 밑에서 청정한 수행을 닦아라.”


697.
미래에 으뜸가는 순수함을 지닌 분이 온다는 것을 예견한 그 현자의 가르침을 받고 나라카는 온갖 선업을 쌓고 자신의 감각을 다스리며 승리자를 기다렸다.


698.
훌륭한 승리자가 진리의 바퀴를 굴린다는 소문을 듣고, 아시타 현자가 일러 준 대로 가장 지혜로운 분을 보고 기뻐하며 거룩한 성인에게 수행의 길을 물었다. (이상으로 서문의 시구는 끝났다.)


699.
나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들려 준 말이 진실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고타마시여, 모든 것에 통달하신 당신께 묻겠습니다.


700.
저는 출가하여 탁발의 수행을 쌓으려 하오니, 성자의 경지와 최상의 경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701.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성자의 경지를 일러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힘들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줄 것이니 마음을 굳게 가지도록 하라.


702.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던지 절을 받던지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라 욕을 먹더라도 성내지 말며 절을 받더라도 우쭐대지 말고 무심하라.


703.
동산의 숲 속에 있더라도 불꽃처럼 여러 가지 유혹이 나타난다. 부녀자는 수행자를 유혹한다. 부녀자로 하여금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라.


704.
모든 육체적 즐거움을 버리라. 모든 욕망을 버리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미워하지 말고 좋아하지도 말라.


705.
그들은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남들에게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706.
보통 사람은 욕망과 탐욕에 집착하지만 눈 있는 사람은 그것을 버리고 진리의 길을 가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지옥을 벗어나라.


707.
배를 비우고 음식을 절제하여 욕심을 없애고 탐내지 말라. 욕망을 버리면 욕심이 없어 평안하다.


708. 수행자는 탁발을 끝내고 숲에 돌아와 나무 아래 앉아야 한다.


709.
그리고 정신을 안정시키고 나무 아래에서 명상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710.
날이 밝으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누구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올지라도 결코 반겨서 안 된다.


711.
그리고 마을에 이르러서는 이 집 저 집 조급하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입을 다물고, 음식을 구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712.
‘음식을 얻어서 잘 됐다’, ‘얻지 못해서 잘됐다’ 생각하고, 어떤 경우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과일을 주우려고 나무 밑에 간 사람이 과일을 줍거나 줍지 못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듯이.


713.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는 그는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시주 받은 것이 적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시주한 사람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714.
스승은 피안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행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거듭 피안에 이르는 일은 없으나 단번에 이르는 일도 없다.”


715.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자에게는 집착이 없다. 해야 할 선도, 하지 말아야 할 악도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716.
스승은 다시 말씀 하셨다.
“그대에게 최상의 경지를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


717.
마음이 어두어서는 안 된다.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걸림이 없이, 청정한 수행을 궁극의 의지처로 삼으라.


718.
홀로 있는 일을 배우라. 으뜸가는 수행은 홀로 있는 것이다. 홀로 있어야만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다.


719.
그렇게 하면 그는 온 세상에 빛나리라. 욕망을 버리고 명상하고 있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내 제자는 더욱더 겸손해지고 믿음이 깊어질 것이다.


720.
이것을 갚은 강물과 얕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라.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722.
사문이 의미 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723.
그러나 스스로 알면서도 자제하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두 가지 관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동산에 있는 미가라 장자네 어머니의 누각 안에 계셨다.

그 때 거룩한 스승은 달 밝은 보름밤에 수행자의 무리에 둘러싸여 집 밖에 계셨다. 거룩한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있는 수행자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다. 그대들이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를 듣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고 누가 묻거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란 무엇이냐고 한다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그침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이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24.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며, 괴로움의 그침을 모르고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모르는 사람들.


725.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생과 사를 계속 받는다.

726.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괴로움의 그침을 알고 또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을 아는 사람들.

727.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고, 지혜의 해탈도 얻는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있다. 그들은 생과 사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업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업을 남김없이 끊어버리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728.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은 생존의 업에 따라 생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 생존의 업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계속해서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분명히 알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관찰해 업을 짓지 말라.”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무지로 인해서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무지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29.
“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 되풀이하여 윤회를 받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지에 있다.


730.
무지란 기나긴 헤멤인데, 이로 말미암아 오랜 윤회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밝은 지혜에 이른 사람들은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1.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732.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욕망을 끊는다면, 괴로움은 없어지고 만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라.


733.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현자나 베다에 통달한 사람들은, 악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식별작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 작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4.
“모든 괴로움은 식별 작용으로 인해 일어난다. 식별 작용이 없어지면 괴로움은 생길 수 없다.”


735.
괴로움은 식별 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식별 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힌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접촉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6.
“접촉에 얽매이고, 생존의 물결에 휩쓸리며, 그릇된 길에 들어선 사람은 속박을 끊기 어렵다.


737.
그러나 접촉을 잘 알아 평안을 즐기는 사람은, 실로 접촉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느낌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느낌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8.
“즐겁든, 괴롭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느낀 것은 모두

739.
괴로움인 것을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의 소멸을 인정하고서야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다.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에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망상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0.
“망상을 벗 삼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41.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망상을 버리고 망상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집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2.
“집착으로 인해 생존이 생긴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난 자에게는 죽음이 따른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가는 원인이다.


743.
그러므로 현자들은 집착을 끊고 태어남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아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움직임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4.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 모든 움직임이 없어지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45.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움직임을 버리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해탈하라.


746.
생존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음이 고요한 수행자는 윤회를 벗어난다. 그는 다시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7.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48.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음식을 잘 알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749.
모든 번뇌의 때를 없애 버리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며 법에 따라 사는 베다의 달인은 어리석은 생존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0.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 모든 마음의 동요가 그치게 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51.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마음의 동요를 버리고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구속이 있는 사람은 주저한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
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2.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이 있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53.
여러 가지 구속 속에 커다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구속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물질적 영역보다도 비물질적 영역이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비물질적 영역보다 소멸의 영역이 더욱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4.
“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과 비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소멸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755.
그러나 물질적 영역을 잘 알고 비물질적 영역에 안주하며 소멸의 영역에 이른 사람들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진리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6.
“보라, 신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그 이름과 형태에 집착해 있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진리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757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758.
그러나 해탈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성자들은 이것을 진리로 알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들어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9.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형상, 소리, 향기, 맛, 감촉,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760.
이런 것들을 신이나 세상 사람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사라질 때 그들은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생각한다.


761.
그러나 성인들은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을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세상의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762.
세상 사람들이 ‘기쁨’이라 하는 것을 성자들은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을 성자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알기 어려운 진리를 보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헤매게 된다.


763
덮여있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암흑이 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펼쳐 보여진다. 마치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빛이 있는 것처럼,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 같은 바보는 진리가 옆에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764.
생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떠내려가, 악마의 영토에 들어간 사람은 이 진리를 깨닫기 힘들다.


765.
성자들 말고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이가 되어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리라.“ 스승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 설법이 있을 때 육십 명의 수행자들은 집착을 없애, 마음이 더러움에서 해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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