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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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기획 시리즈 - 도올, 인도를 만나다 제 13강 싯달타의 깨달음








제 13강 싯달타의 깨달음

 지난 여래사 강의에 이어서 구룡사에서 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반의 공공의 장소에서 불당에서 강의하는 모습이 이때까지 별로 없었던 일 같습니다. 제가 강의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고 이런 모습이 전달됨으로 깊어지고, 우리 종교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상당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은 신을 믿으세요? 안믿으세요? "신을 안 믿는다고 말하기보다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신을 안 믿는다는 것이겠죠." - 정우 스님 - 전지전능하면서 창조의 신을 믿지 않는다. 불교는. 정우스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런 게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래도, 불교에 대한 사람하고, 교회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하고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교회에서 신을 믿으세요? 하면 우렁차게 이야기 할 것 같아요. 문제는 정우 스님 말씀하셨 듯이, 그 신이 뭐냐? 그게 문제겠다. 신이라는 것을 우선 어떤 존재자로 생각하느냐? 안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거든요.

 먼저 이 백묵이 있어요, 없어요? 신은 과연 존재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백묵이 여기 있죠. 이건 우리가 확실히, 철학적으로 백묵이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 있단 말이에요. 이렇게 있듯이, 신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신아라는 것을 백묵이 있듯이 있느냐? 그러면 그 신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 있느냐? 이게 어렵단 말이에요. 신이 물리적 존재와 같이 유추될 수 있는 존재라면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점유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신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말씀하셨듯이, 우주의 보편자라고 한다면, 그러면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러면 문제가 있단 말이에요. 어디서 찾을 것이냐? 있다는 것을 유신론. 있다고 믿고, 없다고 믿으면 무신론이라고 해요. 그러면, 지금 여기서 제가 왜 티벳에서 달라이라마를 뵈었다고 하잖아요. 제가 여쪄봤거든요. 당신은 불교가 무신론이라고 믿습니까? 서슴치 않고, Yes. 무신론이다 그거야.

 그러면 불교와 기독교는 신이라는 문제를 놓고 하나는 없다고, 있다고 한다면, 이 싸움이라는 게 심각할 것 같죠? 무신론(불교)과 유신론(기독교)은 결코 대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신에 대한 다른 방식의 사고일 뿐이다. 깊은 신앙의 차원에서는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원시인들은, 최초에 옛날에는 말도 못했을 동물의 시대. 언어를 안 하던 시대. 그 때 인간에게 느낌만 있었을 거에요.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신이라는 게 어떻게 있었을까? 언어의 발상은 느낌의 응축과 관련된다. 원시인이 옛날에 호랑이한테 쫒겼다. 막오는데, 물려죽을 뻔했는데, 피했는데, 호랑이가 나무에 부딪혀 죽었다. 그 사람 구사일생으로 살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 나무에 대한 느낌이 생겨요. 몰랐지만, 나무가 나를 구해주었고 느낌이 나무를 뭔가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 그러면서, 어떻게 하다가 쳐다볼 때마다 느낌이 응축되면서, "나무"나왔다 이거야. 언어가 된 거야. 나무라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동시에 말이 고대인에게 있어서 그게 하나의 신이 된단 말이야. 느낌의 응축은 언어를 발생시키고, 언어는 보편자가 되며 신이 된다. 신에 존재를 그렇게 되는 상태.

 그렇기 때문에 아주머니들도 많이 계시고, 보살님들도 많이 계신데, 요즘 부엌이 현대식으로 되어서, 한샘 해가지고 안으로 들어왔지만, 옛날에는 밖에 있었잖아요. 거기서 맨날 솥뚜껑 닦고 흙으로 세면 한 번 바르면 그렇게 좋아했다고. 그렇게 대단한 걸로 알았거든. 닦고, 맨날 시어머니 야단 맞고, 솥뚜껑 살다보면, 거기 느낌이 응축될 거라고, 이런게 신이 되었을 거라구. 조왕신 - 부뚜막을 관장하는 신, 가족의 수호신으로서 마당굿의 대상이었다. 항아리 같은 것도, 전부 가져다 기르다가 붓고, 길고 했다가 거기 몇 대 내려오는 항아리인데, 어떤 할머니 속이 상해서 거기 빠져서 자살했다든가, 거기에 느낌이 응축되어서 신이 되었을 거란 말이에요. 삶의 느낌의 응축은 모든 민간신앙의 대상을 탄생시켰다. 아니미즘의 세계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 모든 대상이 그렇게 신격화되어서 나간 상태를 다신론알고 말해요. 다신론 - 이 우주에는 수없이 다양한 신들이 공존한다. 그러니까 영어에서도 to spell 철자하다. 주술을 걸다. 이런 의미가 있어요. 마술을 걸다. 그러니까 모든 언어는 주술 능력이 있어요. 모든 언어는 주술능력이 있다. 우리가 샤마니즘, 무속의 세계에 가면은, 샤마니즘 - 무속, 주술의 제식. 다신론적 세계관이 그 특징이다. 대상이 신이 아닌 게 없다고. 부엌에는 조실령, 돼지우리간에도 신이 있고, 툇마루에도 있고. 모든 게 신격화 되어 있는게, 샤마니즘. 인간 공통은 다신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하였다. 틀림이 없어. 인류의 모든 문명은 다신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모든 종교도 그 원초성에 있어서는 조상숭배와 관련 있다.

 근데, 이 다신론 상태라는 것이 사실 평화로운 거라고. 굉장히 민주적이죠. 민주적인데, 다신론 상태가 유지가 안되요. 이 중에서 신들 중에서도 센 놈이 생기거든. 만신 - 만 가지 다른 신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구유한 자. 신들까리 싸움이 벌어진단 말이야. 그게 신화가 되죠. 신화는 신들 사이의 세력다툼이나 음모, 전쟁, 사랑의 이야기다.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인간세의 반영이다.

 그렇게 싸우는데, 이게 재미난 게 뭐냐면, 다신론적인 신관의 상태가 점점점점 일신론으로 가는게, 폴로세이즘에서 일신론으로 진화해요. 일신론의 등장은 대부분 뭐와 일치하냐면, 대제국의 통일 시기에 일신론이 나와요. 아니겠어요? 일신론의 출현은 지상에서의 제국의 통일과 일치한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일신론이라는 개념이 존재해본 적이 없다. 옛날 부족국가 시대에는 일신론이 없단 말이에요. 각기 다른 신을 섬기고 살아요. 제국이 되면서 하나로 통일되면서, 신들의 세계도 통일된단 말이죠.

 기독교도 유일신관 이라고 하지만,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한느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대에까지 갚는다. 출20:3-5 다신론적인 세계관을 인정하는 거에요. 신은 많은데, 이스라엘 부족 많은 신을 모시고 살았는데, 출애굽해서 살려주어서 이제부터는 내 말을 믿어라, 이거야. 이게 모세의 신관에서도 나온다지만, 일신론, 다윗 왕조가 성립되면서 일신론 확립된다고 생각해요. 야훼의 일신론 확립은 다윗왕조의 출현과 일치하는 사건이다. 이게 세계적 추세이고,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것이 모든 게 일어나는데, 신관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문제에 있어서, 다에서 1로 가잖아요. 폴리세이즘에서 모이로 가요. 나의 신만이 유일하다. 인도에서도 브라흐마니즘 - 브라흐마닌의 다른 신들에 대한 최고 권위를 인정하고 브라흐만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고대 브라흐만 계급의 종교 일신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시대. 희랍에는 제우스가 제압하는 만신이죠.

 그런 상태인데, 문제는 인도에서 수학에서 인도가 수학으로도 10진법에서 하다가 1에서 1이라는 숫자를, 1-10은 쉬운데, 1에서 0으로 가기는 어렵단 말이에요. 그래야 마이너스로 가는 게 가능한데, 인도에서 제로를 제일 처음 만들었단 말이야. 인류 수학의 역사에 있어서, 영 즉 제로의 발상은 인도문명에서 처음 이루어진 것이다. 0이라는 수학사에 보면, 제로라는 것을 제일 먼저 만들었데요.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인류 다신론에서 일신론에서 0으로 가야 한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요? 신의 역사에서 다신론에서 1신론에서 0으로 간게 싯달타의 혁명이란 말이야. 다신론 - 일신론 - 영신론 종교의 진화는 제로신관에서 극상에 달한다. 그것이 곧 싯달타의 혁명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로라는 것을 불교에서 공이라고 표현하잖아요. 공이라는게 백묵이 여기 있죠. 불교에서 뭐라고 봐야돼? 이 지우개가 색입니까? 공입니까? 여러분 색이라는 게, 뭐에요? 검은색, 하얀색이 있잖아요. 그래서 색이라는 것을 불교 색 - 인도철학일반에서 쓰는 개념으로 물질적 존재의 총칭. 물질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감각기관 - 안,이,비.설,신,의 감각대상 - 색,성,향,미,촉,법 저기 빨간 조명을 배봐요. 변하죠. 까만 것도, 햐안 것도. 그러면 이 색깔의 진짜 색이 뭐냐? 검은 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태양 광선이라는 또 하나의 조명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검은색이라고 하는 거에요. 대답할 수 있어요? 없어요. 대답할 수 없으니까. 공이라고 하는 거야. 공 - 비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인식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물질이기 때문에 색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색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에 의존되어 있을 때만 색이므로 우리가 이것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공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 공이라는 게 또 다시 불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공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없잖아요. 뭔가가 있잖아요. 공은 아니에요. 그런데, 사실 이것도 오래되면, 삭어지고 없어지면 공이 되겠죠. 알고 보면, 천이고 뭐고 모여져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이런게 흩어지면 공이잖아요. 이것이 공이라는 건 없다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잘 들으시네요. 역시 구룡사가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여기 없다가 아니라, 결국은 이것은 모든 것이 모든 것과 공이라는 것은 관계되어 있다는 거에요. 공은 비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관계양상이다. 흩어질 수도 있고, 뭐가 될 수도 있고, 형태가 변한단 말이에요. 이건 이걸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계되어 있다는 거야. 잘 보세요. 하나님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공으로써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삼라만상의 존재와 반드시 존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반드시 활동 중에 있는 현실태와 관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초월신관을 생각할 적에 우주삼라만상은 따로 있고, 색의 세계. 물질세계. 삼라만상이 있는데, 어디 붕 떠서 하나님이 있다. 저 꼭데기에 하나님이 있다. 이건 영원히 유치한 오류. 초월신관의 해석이 현실태와 무관한 비시간적인 신을 갖어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유치한 것이다. 전 누가 무신론자이냐, 신론자이냐, 물으면, 너무 유치하기에 대답을 안해요. 무신론이거든, 신이든 신에 대한 물음. 이해 방식. 난 최소한, 이런 현실적에 떠나서 생각하기 싫어요. 신은 세계내적 존재이다. 신은 무한한 주체적 지향의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활동 속에 있다. 신은 영원히 달성 중에 있는 현실태일 뿐, 결코 달성된 현실태일 수 없다. 여러분들 다, 이게 다 신인데, 이것 관계에서 신을 생각해야 하고, 신이라는 것은 항상 우주와 더불어 있는 존재이지 초월할 순 없단 말이죠.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한다면, 이 세계 또한 신을 창조하다.

 같이 한 번 읽어봅시다. 내 지금으로부터 이 자리에서 무상의 큰 지혜를 얻지 않으면 이 몸이 다 마르고 부서지더라도 결단코 이 가부좌를 풀지 않으리 해서 싯달타가 고행의 선정에 들어가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싯달타에 깨닳음의 과정을 추적해 들어갈 적에, 싯달타 지금 뭐냐면, 선정에서부터 알라라 칼라마 - 싯달타의 첫 스승 웃다카 라마풋다 - 두 번째 스승 이것도 몸에 특수한 집중 상태를 말하는데, 풀어지고 나면, 번뇌가 오고, 선정 몸의 특수한 조건일 적에는 이것이 인간의 궁극적 해탈을 가져올 수 없다. 선정에서 이미 깊은 상태에 올라갔던 상태. 고행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육체와 정신이 대립관계에 있는 이원론적인 구조 속에서는 육체의 학대를 통해 얻어지는 정신의 해방은 결코 번뇌로부터의 해탈일 수 없다는 것이 싯달타의 깨달음의 출발이었다.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싯달타의 수행의 마라와의 싸움이였다고 생각한다면 잘 풀리지 않아요. 마라 - 수행중의 싯달타를 유혹하는 악마의 일반명칭. 파순 즉 파피야스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이미, 선정과 고행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극복한 차원. 다시 싸우고 그럴 상황은 아니거든. 싯달타는 이미 선정과 고행을 극복했다. 그러므로 보리수나무 밑의 깨달음의 과정은 선정이나 악마와의 투쟁으로 묘사될 수 없다.

 싯달타에게도 유혹의 이런 것들이 찾아옵니다. 유명한 것이 마왕 세 딸을 보냈다고 하잖아요. 마왕 파피야스의 세 딸 : 1.염욕 2.능열인 3.가애락 그래서 요염한 딸들을 보내는데, 경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눈썹을 치켜들고 말이 없으며, 치마를 치켜든다. 연모하는 듯, 뚤어지게 바라본다. 한문에 어려운 있어요. 하고 있어요. 공경하는 듯, 번갈아 꼬집고 꼬집는 구나. 무릎과 허벅지를 드러내며 젓가슴을 드러내는 구나. 마왕의 딸들이 싯달타를 꼬시는 구절이 있어요. 따스한 호시절에 뭇 풀과 숲과 나무 모두 피어 무성하네 장부로서 즐기는 마땅한 패가 있는 법이니 한창 패를 하면 버리고 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싯달타가 얘기하는 위대한 괴송이 있어요. 얘기한게,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케 하고, 오욕에물들음은 신통을 흐리는 도다. 내 모든 번뇌를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거늘, 어찌 다시 독궤의 불구덩이로 뛰어들까보냐. 세간의 오욕이 중생을 불태움이 아~ 세찬 불이 마른 풀을 태우는 것 같도다. 너희들의 몸뚱이는 허화이요 실체가 없으니 파도의 거품과도 같이 오래 머무 수가 없구나. 너희들의 엉킨 핏줄과 근골은 사대와 오온의 가합일 뿐, 어찌 내 범부들과 같이 욕심을 내리오? 채색한 항아리 속의 독사들이여! 똥찌꺼기 가득 찬 가죽주머니에 불과한 그대들이여! 어찌 세간을 벗어난 나를 잡으려 하느뇨? 나는 공중을 자유로이 나는 바람과 같으니 그대들의 애욕으로는 영원히 날 묶어두지 못하리.

 그 불경에 이러한 시들은 말이죠, 정말 저 아름답기 그지없어요. 세익스피어의 문학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제 처는 이 시에서 말이죠. 아주 충격을 받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예쁜 여자보면, 똥이 많이 나올 때는 어마어마하게 나오거든. 사실 말이야. 여자를 아름다운 것으로만 볼 수 있지만, 안에 똥이 가득 찬 것을 항문괄약근 - 결장 통로를 폐쇄시키는 중총적 근섬유의 윤상대로서 우리 모의 가장 강한 근육조직이다. 이 안에 똥아 가득 차 있고, 여기 뭐라고 되어 잇어요? 똥 가득 찬 가죽주머니에 불가한 것들이라고.

 인간을 바라볼 때 싯달타는 뭘 깨달았느냐? 싯달타의 깨달음 핵심은 선정이라든가, 학대가 아니라, 뭔가 새로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길을 제시. 싯달타의 깨달음은 고도 낙도 선정도 고행도 부정되는 아주 새로운 길이었다. 그것을 중도라 부른다. 그것은 이 사람이 앉아서 사색에 들어간 거에요.

 이 사람은 사색에 들어간 거고, 원래 카필라성에서 사색하기를 좋아했고, 중도는 지혜였고, 그것은 기존의 모든 종교를 혁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반가사유상. 이게 뭐냐면, 생각하는 게 있다는 것. 로댕의 생각하는 사나이 아시죠? 이건 현대 작가 작품이지만, 미륵반가사유상 같이 생각해보신 적 없죠? 같은 거야. 사유하고, 인가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단 말이야.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길이 뭐냐? 고민하고 해석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일 마지막에 도달한 것은 뭐냐? 이걸 소위 연기라고 해요. 연기 - 보리수 아래서 싯달타가 증득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내용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연기라는 것이 최소한, 초기불교의 문헌들에 보면 문제가 있으나, 이렇게 해들어 간 거잖아요. 노사. 사문유관. 노병사. 에 대해서 비참한 것을 깨달았잖아요. 파고들어갔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어려운게 아니에요. paticca(의존하여) +sam(같이) +uppada(일어난다) 연자가, 의존한다. 의존하여서, 기라는건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 삼웃빠다. 삼이라는게 같이. 같이 일어난다. 빠띠샤, 연하여 일어난다. 그래가지고, 여기 노사, 인간의 노사라는 건 노병사의 비참한 현실이 어디서 왔는가? 무엇에 연하여 일어났는가? 노사가 일어난 것은,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늙고 죽는다 아니에요? 상당히 철학적으로 들어가는데, 그러면 태어나는 건 무엇에 의지하여 일어나는가?

 고민해보니까. 노사 - 생 - 유 - 취 - 애 - 수 - 촉 -육처 - 명색 - 식 -행 - 무명 유가 있기 때문에, 싯달타의 깨닳음이라는 건 생각보다 놀랍게 단순한 것인데, 그 당시 과학도 없었고, 이런 시대에 있어서 싯달타의 사유, 너무 혁명적이고 이해가 안 되는 것. 나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어요. 간단한 거지만, 이거를 이해하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고.

 우주 설계자가 있다고 해봐. 설계도에 만들어졌고, 우주는 진행되고 있다. 이거는 우주에 설계자라든가, 지배자 이거를 부정한단 말이에요. 근세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무신론이에요. 근세과학은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우주 밖에 우주를 움직이는 존재자를 전제하지 않는다. 과학은 무신론이에요. 나름대로 법칙이로, 우주는 우주자체로 Self-organizing Universe - 우주는 우주 스스로 자기 법칙을 만들어간다. 즉 우주의 질서는 자체로써 자생되며 완결되는 것이다. 그 법칙을 가지고 움직일 뿐이고 탐구해 들어갈 뿐이지, 인격적 존재는 생각지 않는단 말이에요. 우주법칙을, 싯달타는 인간의 고뇌 상황에서 일으키는 우주밖에 존재자가 있어서 존재자가 우리 운명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싯달타는 인간의 고뇌상황은 인간 스스로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의 해결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윤회상황 그 자체의 분석에만 몰두했다. 그것이 연기였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존재상황이라는 것을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봤어요. 연기를 보는 자는 곧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곧 연기를 보는 것이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곧 나 부처를 본다. 자 여기서 명료해지잖아요. 연기가 곧 자기가 깨닳은 법의 전부라는 거에요. 왜 내가 늙어서 죽는가?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 엄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 우리 상식으로는 더 쉽게 오는 연기죠. 그렇게 되고, 그러면 우리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났기 때문에, 결혼했기 때문에. 취 -upadana 그럼 왜 그 사람들은 결혼을 하게 되었느냐? 하고 보면, 그들은 서로 사랑을 했기 때문에. 애라는게 있었잖아. 그럼 왜 또 둘이 사랑을 하게 되었느냐? 계속 들어가. 인간 삼라만상, 인과관계가 있다는 거에요. 그들은 결혼, 어떻게 만나서. 촉 촉 - phassa 결국 그들은 무지했기 때문에 무명 - avijja 이해가 가시죠?

 모든 인간의 번뇌 상황을 추적해 들어가면, 무명이라고 하는, 무명이라는 밝을 무에 없을 무. 밝지 못한. 밝다는 건 인간 사회 모두에 대해서 밝게 안다는 거에요. 밝게 알면 해결된다고 믿었어요. 불교는 이렇게 애매한 구석이 없어요. 무명 곧 무지가 인간의 고뇌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싯달타는 기나긴 사색 끝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어렵고 애매한 구석이 없어요. 생에 연하여 노가가 기한다. 이러한 깨닳음은 꺼구로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고,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어지고 될 꺼 아니에요.

 있다. 생겨난다라는 것. 순관 이라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추리해 들어가는게 순관이라고, 이런 것을 역관이라고 하는데 초기경전에는 그게 없어요. aniloma : 발생하는 대로 : 순관 하나는 뭐에요? 소멸하는 대로 patiloma : 소멸하는 대로 : 역관 불교에서 말하는 순관과 역관의 문제. 노병사도 하나의 법이란 말이에요. 12지 연기의 모든게 법이에요. 12지연기의 모든 항목이 다 법이다. 이것 때문에 이게 생겨나고, 그런데 이게 없어지면 이게 없어지고 과학적인 이야기. 이 법은 영원한 자기가 없다는 거에요. 모든 법은 항구적이고 독립적인 자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 제법무아 이것은 영원한 자기가 없다는 거에요. 무아라고 그래요. 이 법이 있어서 법이 생겼는데, 자기가 없단 말이야. 독립적인게 아니란 말이에요.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항목을 추리해가면, 이러한 원인이 있고, 제거하는 항목이 있는데, 제법무아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연기에서 나온 거에요. 제법무아는 연기적 사유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명제이다.

 이해가 가요? 근데 이거를 너무 내가 강의하는 데로 괴롭고 힘이 드는데, 뭐냐면, 이게 너무 어려운 문제에요. 그 당대로서는 이해가 될 수 없는 과학적 사고였단 말이야. 당시 육성외도가 난무하고 2천년 전에 예수님은 나사로를 일으키고 특별한 능력가진 분이 하신지는 모르겠지만, 2천년 전에 싯달타는 아이슈타인보다 더 철저한 과학적 사고를 했단 말이야. 싯달타의 연기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사유였다. 아인슈타인은 뭐냐면, 우리 살고 있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연기를 밝히는 거에요. 싯달타의 1차적 관심은 우리의 삶에 윤리적 문제 상황. 이것도 아인슈타인처럼 풀수 있단 말이에요.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세계의 새로운 법칙을 발견했다. 싯달타는 인간의 윤리적 상황의 과학적 법칙을 발견했던 것이다. 싯달타는 과학과 종교와 윤리의 대 통일장을 만드려는 사상가였다. 그게 보통생각입니까? 그게. 그래서 뭐냐면, 지금 순관. 이 법 때문에 이게 생기고, 이거를 우리는 유전연기 - 고뇌가 발생하는 연기 이것이 없어지만, 없어지고 이걸 환멸연기 - 고뇌가 소멸하는 연기 불교는 유전연기와 환멸연기를 동시에 생각해야 된단 말이에요. 불교적 사유는 항상 유전연기와 환멸연기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여기에 유명한 이러한 것을 얘기한게, 12지 연기보다, 유전연기와 환멸연기에 대한 것을 마하박가는 생하는 법은 어느 것이나 모두 멸하는 법이다. 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출처: Dohol@NeT






도올 김용옥(金容沃)

대한민국의 철학자, 사상가, 교수, 한의사...

 김용옥(金容沃, 1948년 6월 14일~ )은 호 도올(檮杌)로도 잘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의 철학자, 사상가이다.

 대학교수를 지낸 학자이자 한의사이고, 극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연출가이고, 영화와 연극의 시나리오를 쓴 극작가이고, 언론에 기사와 칼럼을 써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대중을 대상으로 강의한 TV 노자와 21세기 강좌에서의 상식을 깨는 인상적인 강의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철학은 동양과 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기철학을 중심으로 한다. 아직 그 전모에 대해서는 형성중이라고 여겨지지만 동양사상이 그 뿌리인 기철학을 통해 서양철학의 여러 문제를 해소하고 사상적,보편적 비전을 제시하는 의미를 가지리라 판단된다.


1953년 4월~1959년 3월 천안제3국민학교 졸업
1959년 4월~1965년 2월 보성중•고등학교 졸업 (55회)
1965년 3월~1967년 2월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생물학과
1967년 3월~1968년 2월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
1968년 3월~1972년 2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문학사, 「버트란드 럿셀의 논리원자주의」)
1972년 3월~1972년 8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대학원
1972년 9월~1974년 6월 대만 국립대만대학 철학연구소 (철학석사,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
1974년 9월~1975년 3월 일본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연구생
1975년 4월~1977년 2월 일본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철학석사,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
1977년 2월~1977년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
1977년 9월~1982년 6월 미국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철학박사, 「왕부지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chich(1616~1692)」)
1990년 3월~1996년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한의학사)



저서: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통나무, 1985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986
《루어투어 시앙쯔》(윗대목• 아랫대목), 통나무, 1986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통나무, 1986
《어찌 묻힌단 말 있으리오》, 통나무, 1986
《아름다움과 추함》, 통나무, 1987
《절차탁마 대기만성》, 통나무, 1987
《이땅에서 살자꾸나》, 통나무, 1987
《새춘향뎐》, 통나무, 1987
《老子哲學 이것이다》(上), 통나무, 1989
《나는 佛敎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989
《老子-길과 얻음》, 통나무, 1989
《도올 金容沃의 新韓國紀 》, 통나무, 1990
《白頭山神曲-氣哲學의 構造》, 통나무, 1990
《장군의 아들》, 통나무, 1990
《讀氣學說》, 통나무, 1990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통나무, 1990
《도올세설》, 통나무, 1990
《대화》, 통나무, 1991
《도올논문집》, 통나무, 1991
《三國遺事引得》, 통나무, 1992
《氣哲學散調》, 통나무, 1992
《石濤畵論》, 통나무, 1992
《너와 나의 한의학》, 통나무, 1993
《醫山問答-기옹은 이렇게 말했다》, 통나무, 1994
《삼국통일과 한국통일》(上•下), 통나무, 1994
《天命•開闢》, 통나무, 1994
《檮杌先生 中庸講義》(上), 통나무, 1995
《건강하세요》(Ⅰ), 통나무, 1998
《話頭, 혜능과 셰익스피어》, 통나무, 1998
《이성의 기능》, 통나무, 1998 (원저: The function of Reason, Alfred North Whitehead)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통나무, 1999
《노자와 21세기》(1•2•3), 통나무, 1999(1권), 2000(2•3권)
《도올 논어》(1•2•3), 통나무, 2000(1권), 2001(2•3권)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1•2•3), 통나무, 2002
《도올의 淸溪川 이야기》, 통나무, 2003
《혜강 최한기와 유교》, 통나무, 2004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통나무, 2004
《도올심득 東經大全》(1), 통나무, 2004
《도올의 국가비젼》, 통나무, 2004
《앙코르와트•월남가다》(上•下), 통나무, 2005
《논술과 철학 강의》(1•2), 통나무, 2006
《요한복음강해》, 통나무, 2007
《기독교성서의 이해》, 통나무, 2007
《큐복음서》, 통나무, 2008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1), 통나무, 2008
《논어한글역주》(1•2•3), 통나무, 2008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의 제2강,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9
《효경한글역주》, 통나무, 2009
《대학•학기 한글역주》, 통나무, 2009
《계림수필》, 통나무, 2009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1•2•3), 통나무, 2010



TV 강의
1999년 11월~2000년 2월 《노자와 21세기》(56회), EBS
2000년 10월~2001년 5월 《도올의 논어 이야기》(64회), KBS
2002년 8월~2002년 11월 《도올, 인도를 만나다》(28회), EBS
2004년 1월~2004년 6월 《도올 한국사상사특강, 우리는 누구인가》(26회), MBC
2006년 1월~2006년 5월 《도올특강 역사를 말한다》(6회), 광주MBC
2006년 2월~2006년 8월 《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50회), EBS
2009년 11월, 《도올특강 논어이야기》, 광주MBC


모든 정보의 출처: 위키 백과사전



도올 김용옥(金容沃)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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