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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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13. 전법륜경(轉法輪經)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이란 괴로움에서부터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인식의 형태를 지칭


“이와 같이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은 먼저 제1단계로서, ‘이것이 고(苦)임을 알고, 이것이 고(苦)의 집(集)임을 알고, 이것이 고(苦)의 멸(滅)임을 알고, 이것이 고(苦)의 멸(滅)에 이르게 하는 도(道)임을 안다’고 하는 사제(四諦)의 충실한 이론적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다음 제2단계로서 ‘고(苦)는 널리 알아야 할 것이요, 집(集)은 끊어버려야 할 것이요, 멸(滅)은 실증해야 할 것이요, 도(道)는 닦아야 할 것이다’고 하여 사제가 여실히 실천 체험되어져야 할 것임을 서술했다.

최후의 제3단계로서 ‘고(苦)를 두루 앎을 마치고, 집(集)을 끊어버림을 마치고, 멸(滅)을 실증함을 마치고, 도(道)를 닦음을 마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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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 13

전법륜경(轉法輪經)


<원문(原文)>

(二七三)
如是我聞: 一時, 佛住波羅?(國)鹿野苑中仙人住處.

爾時, 世尊告五比丘: “此苦聖諦. 本所未曾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此苦集•此苦滅•此苦滅道跡聖諦, 本所未曾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次, 苦聖諦智當復知, 本所未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苦集聖諦已知當斷, 本所未曾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次, 苦集滅, 此苦滅聖諦已知當知作證, 本所未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以此苦滅道跡聖諦已知當修, 本所未曾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次, 比丘! 此苦聖諦已知, 知已出, 所未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次, 此苦集聖諦已知, 已斷出, 所未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次, 苦滅聖諦已知•已作證出, 所未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復次, 苦滅道跡聖諦已知•已修出, 所未曾聞法, 當正思惟. 時, 生眼•智•明•覺.”

“諸比丘! 我於此四聖諦三轉十二行不生眼•智•明•覺者, 我終不得於諸天•魔•梵•沙門•婆羅門聞法?中, ?解脫•?出•?離, 亦不自證得阿?多羅三?三菩提. 我已於四聖諦三轉十二行生眼•智•明•覺, 故於諸天•魔•梵•沙門•婆羅門聞法?中, 得出•得脫, 自證得成阿?多羅三?三菩提.”


爾時, 世尊說是法時, 尊者?陳如及八萬諸天遠塵離垢, 得法眼淨. 爾時, 世尊告尊者?陳如: “知法未?” ?陳如白佛: “已知. 世尊!” 復告尊者?陳如: “知法未?” 拘?白佛: “已知. 善逝!” 尊者拘?已知法故, 是故名阿若拘?. 尊者阿若拘?知法已, 地神?聲唱言: “諸仁者! 世尊於波羅[木*奈]國仙人住處鹿野苑中三轉十二行法輪, 諸沙門•婆羅門•諸天•魔•梵所未曾轉, 多所饒益, 多所安樂, 哀愍世間, 以義饒益, 利安天人, 增益諸天?, 減損阿修羅?.”

地神唱已, 聞虛空神天•四天王天•三十三天•炎魔天•兜率陀天•化樂天•他化自在天展轉傳唱, 須臾之間, 聞于梵天身. 梵天乘聲唱言: “諸仁者, 世尊於波羅?國仙人住處鹿野苑中三轉十二行法輪, 諸沙門•婆羅門•諸天•魔•梵, 及世間聞法未所曾轉, 多所饒益, 多所安樂, 以義饒益諸天世人, 增益諸天?, 減損阿修羅?.”

世尊於波羅?國仙人住處鹿野苑中轉法輪, 是故此經名轉法輪經.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역문(譯文)>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波羅내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鹿野苑)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사유하라. 그러면 그때 눈[眼]•지혜[智]•밝음[明]•깨달음[覺]이 생길 것이다. 이 괴로움의 발생•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는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다음에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에 관한 지혜도 마땅히 또 알아야 한다. 이것도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사유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았으면 마땅히 끊어야 한다. 이것도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다음에는 괴로움의 발생을 소멸하는 것이니, 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았으면 마땅히 증득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도 과거에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 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또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았으면 마땅히 닦아야 한다. 이것도 과거에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다음은 비구들이여,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벗어났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도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또 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끊어 벗어난 것이다. 이것도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또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증득하여 벗어난 것이다. 이것도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또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알고 이미 닦아 벗어난 것이다. 이것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이니 마땅히 바르게 생각하라. 그러면 그때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길 것이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 네 가지 진리를 세 번 굴린 십이행에 대하여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나는 끝내 모든 하늘•악마•범(梵)•사문(沙門)•바라문(婆羅門) 등 법을 듣는 대중들 가운데에서 해탈하지도 벗어나지도 여의지도 못했을 것이요, 또한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네 가지 진리를 세 번 굴린 십이행에 대하여 눈•지혜•밝음•깨달음이 생겼기 때문에 모든 하늘•악마•범•사문•바라문 등 법을 듣는 대중 가운데서 벗어나게 되었고 해탈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되었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존자 교진여(僑陳如)와 팔만의 모든 하늘들은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때 세존께서 존자 교진여(僑陳如)에게 말씀하셨다.

“법을 알았느냐?”

교진여는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미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또 교진여에게 물으셨다.

“법을 알았느냐?”

구린(拘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시여.”

존자 구린이 이미 법을 알았기 때문에 이름을 아야구린(阿若拘隣)이라고 부르셨다. 존자 아야구린이 법을 알고 나자 지신(地神)들은 소리를 높여 외쳤다.

‘여러분, 세존께서는 바라내국(波羅國)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鹿野苑)에서 세 번 굴린 십이행의 법륜(法輪)을 굴리셨습니다. 이는 어떤 사문 바라문이나 하늘•악마•범들도 일찍이 굴린 적이 없는 것으로서, 유익한 바가 많고 안락하게 하는 바가 많은 것입니다. 세간을 가엾이 여겨 이치로써 이롭게 하시고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고 편안하게 하여, 하늘 무리들은 더욱 불어나게 하고 아수라의 무리들은 줄게 하셨습니다.’

지신이 외치고 나자 그 소리를 들은 허공신천(虛空神天)•사천왕천(四天王天)•삼십삼천(三十三天)•염마천(炎魔天)•도솔타천(兜率陀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들이 서로 이어가며 외쳐 그 소리를 전하였고 잠깐 사이에 범천(梵天)까지 들리게 되었다.

범천도 그 소리를 받아 ‘여러분, 세존께서는 바라내국의 선인이 살던 녹야원에서 세 번 굴린 십이행의 법륜을 굴리셨습니다. 모든 사문•바라문과 모든 하늘•악마•범들이 들은 이 법은 일찍이 굴려진 적이 없는 것으로서, 유익한 바가 많고 안락하게 하는 바가 많은 것입니다. 세간을 가엾이 여겨 이치로써 이롭게 하시고 하늘과 사람들을 이롭고 편안하게 하여, 하늘 무리들은 더욱 불어나게 하고 아수라의 무리들은 줄게 하셨습니다’ 하고 외쳤다.

세존께서 바라내국의 선인(仙人)이 살던 녹야원에서 법륜을 굴리셨기 때문에 이 경을 <전법륜경(轉法輪經)>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해석(解釋)>

 이 경에 나오는 교진여(僑陳如)는 꼰단냐(Kondanna)의 음사이다. 다섯 비구 중 첫 번째로 깨달음을 증득한 사람이다. 구린(拘隣)은 꼰단냐(Kondanna)의 음사이다. 한 경에서 동일한 인물, 즉 꼰단냐를 교진여(僑陣如)와 구린(拘隣) 두 가지로 음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선서(善逝)는 수가따(Sugata)의 번역이다. 여래십호(如來十號) 중의 하나로, ‘잘 건너가신 분’이라는 뜻이다. 아야구린(阿若拘隣)은 안냐 꼰단냐(Anna Kondanna)의 음사이다. 아약교진여(阿若僑陳如)로 음사되기도 하는데, ‘깨달은 꼰단냐’라는 뜻이다.

 이 경은 <잡아함경> 권15 제379경(<대정장> 2, pp.103c-104a)이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는 <상윳따 니까야> 56:11 Tathagatena-vatta(여래의 말씀)이다. 하지만 이 경은 일반적으로 <轉法輪經(Dhammacakkapavatthana-sutta)>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이 경이 제56 諦相應(Sacca-samyutta)의 ‘轉法輪品(Dhammacakkapavatthana-vagga)’에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경을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경의 이름은 <전법륜경(轉法輪經)>이다.

 역사적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뒤,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최초로 법을 설했다. 그래서 그때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부른다. 초전법륜이란 ‘최초로 법의 수레바퀴[法輪]을 굴렸다’는 뜻이다. 그때 설한 것이 바로 이 경이다. 그러나 이 경의 이름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없다.

이 경과 대응하는 한역의 <잡아함경>에서는 “세존께서 바라내국의 선인(仙人)이 살던 녹야원에서 법륜을 굴리셨기 때문에 이 경을 ‘전법륜경(轉法輪經)’이라고 한다(世尊於波羅 國仙人住處鹿野苑中轉法輪, 是故此經名轉法輪經)”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雜阿含經> 卷15 第379經(<大正藏> 2, p.104a)]

이 경전에서 붓다는 사성제의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 tiparivattam dvadasakaram)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고 말했다. 삼전십이행이란 ‘세 번 굴린 열두 가지의 형태’라는 뜻이다. 삼전(三轉)이 각각 안(眼)•지(智)•명(明)•각(覺)의 네 가지 행상(行相)을 갖춤으로써 모두 합하여 십이행상(十二行相)이 된다.

 이와 같이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은 먼저 제1단계로서, ‘이것이 고(苦)임을 알고, 이것이 고(苦)의 집(集)임을 알고, 이것이 고(苦)의 멸(滅)임을 알고, 이것이 고(苦)의 멸(滅)에 이르게 하는 도(道)임을 안다’고 하는 사제(四諦)의 충실한 이론적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다음 제2단계로서, ‘고(苦)는 널리 알아야 할 것이요, 집(集)은 끊어 버려야 할 것이요, 멸(滅)은 실증해야 할 것이요, 도(道)는 닦아야 할 것이다’고 하여 사제(四諦)가 여실히 실천 체험되어져야 할 것임을 서술했다.

최후의 제3단계로서, ‘고(苦)를 두루 앎을 마치고, 집(集)을 끊어 버림을 마치고, 멸(滅)을 실증함을 마치고, 도(道)를 닦음을 마친다’는 것이다.

요컨대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이란 괴로움에서부터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한 인식의 형태를 말한다.

즉 ①시전(示轉)은 ‘이것은 괴로움이다’ 등의 사제(四諦)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진리에 대한 지식(saccanana)을 말한다.

②권전(勸轉)은 ‘괴로움은 알아야 할 것이다’ 등으로 사제(四諦)의 수행을 권하는 것이다. 즉 해야 할 일에 대한 지식(kiccanana)을 말한다.

③ 증전(證轉)은 ‘괴로움을 스스로 알았다’ 등으로 사제(四諦)를 증득하는 것이다. 즉 한 일에 대한 지식(katanana)을 말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단계가 견도(見道)이고, 두 번째 단계가 수도(修道)에 해당되며, 세 번째 단계가 정각(正覺)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즉 붓다는 사제(四諦)의 관법을 통해 견도(見道)•수도(修道)•정각(正覺)의 3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후대의 아비달마불교에서 이 세 가지 수행단계를 체계화하여 ‘삼도(三道)’라고 했다.

그리고 이 경의 후반부에서는 이 가르침을 받고 제일 먼저 꼰단냐(Kondanna)가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의 상황을 신화적 수법을 동원하여 매우 감격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붓다의 제자 중에서 최초로 깨달은 자가 출현했다는 것은 크나큰 경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에서는 지신(地神)을 비롯한 여러 천신(天神)들이 이 사건을 찬탄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역사적 사실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마성 스님은...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철학석사(M.Phil.) 학위를 받았다.
태국 마하출라롱콘라자위댜라야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및 팔리문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불교신행공덕』(불광출판부, 2004), 『마음 비움에 대한 사색』(민족사, 2007), 『사캬무니 붓다』(대숲바람, 2010), 『왕초보 초기불교 박사되다』(민족사, 2012) 등이 있으며,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 팔리문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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