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팔경(陽山八景)
바위, 물, 소나무 어울린 ‘삼합(三合)’의 명당
금강 물 속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 위에 소나무들이 갖가지 형태로 빼곡하게 자라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기(氣)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분이 강선대 그림을 보더니 강한 기가 강선대 바위에서 빙글빙글 돈답니다.
금강이 흐르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의 수려한 절경을 손꼽아 양산팔경이라고 부릅니다. 강변에 자리 잡은 절경 중에 강선대(降仙臺)를 첫째로 칩니다.
금강 물 속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 위에 소나무들이 갖가지 형태로 빼곡하게 자라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기(氣)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분이 강선대 그림을 보더니 강한 기가 강선대 바위에서 빙글빙글 돈답니다. 소나무는 영목(靈木)이어서 기가 좋은 곳에서 잘 자라게 마련이고요.
100년 묵은 소나무 1만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숲
소나무가 둥글게 원을 그린 기암 위에 자그마한 육각형 정자를 세웠습니다. 강선대는 바위와 물과 소나무가 어울려 삼합(三合)을 이룬 곳입니다. 삼합이란 홍어와 돼지고기를 묵은 김치에 싸서 먹는 별미를 말합니다. 양기(陽氣)가 강한 바위와 음기(陰氣)를 품은 물을 소나무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여 풍류 차원으로 승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삼합지에 정자가 올라앉아 한 폭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엽서와 같은 아름다운 구도가 나옵니다. 바위 아래의 깊은 물은 짙푸른 색으로 강선대에 무게를 더해줍니다.
일본식 석축과 정자의 콘크리트 기단에 쇠로 만든 난간이 보기 싫어 우리식 석축과 목조 계자난간으로 고쳐 그렸으니 이해하고 봐주세요.
강선대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넓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시야에 꽉 찹니다. 송호국민관광지로 8만6000평의 넓은 터에 100년 묵은 소나무 1만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연안부사를 지낸 박응종(朴應宗)이 낙향하여 강 언덕에 집을 짓고 주변에 종자를 뿌려 가꾼 소나무입니다. 이 소나무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으니 밀양 박씨 후손에게 큰 선물을 남겨준 것이지요. 솔 숲 사이로 방가로, 야영장, 물놀이장 등을 갖추어 놓았고 강에서는 레프팅도 즐길 수 있답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리에 자리잡은 여의정(如意亭)
송호국민관광지의 포인트는 여의정(如意亭)입니다. 강가에 봉곳하니 솟은 바위 위에 지은 정면 2칸, 측면 1칸짜리 작은 정자입니다. 휘돌아 흐르는 금강과 너른 소나무 숲의 중심에 있어 풍류의 장소로 제격입니다. 박응종이 자기의 호를 따서 만취당(晩翠堂)이라는 정자를 세웠던 곳에 1935년 후손들이 다시 세웠습니다. 화강석 기둥과 철제 난간을 한옥의 법식대로 목재로 바꾸어 그렸습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복원하면서 기둥과 서까래 등을 철근 콘크리트로 지었기 때문에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 고쳐지을 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을 옛 글씨로 바꾸어 달 예정이랍니다. 잘못 복원한 결과입니다.
오래 전에 만든 것만 문화재가 아닙니다. 새로 만들어 놓은 것도 제대로 만든 것은 100년, 200년이 지나면 문화재가 될 수 있습니다. 강선대와 여의정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자리에 지은 정자입니다. 제 법식대로 고쳐놓으면 당장 보기에도 좋고, 영동의 명물이 되어 후대에 훌륭한 문화재로 대접 받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강선대와 여의정의 중간쯤 되는 강 속에 바위가 솟아 있는데 이를 용암(龍岩)이라 부릅니다. 군의 안내서에는 ‘용이 승천한 곳’이라고 되어 있고 ‘강선대에 목욕을 하려고 내려온 선녀들을 숨어서 보던 용이 들켜서 바위가 되었다’는 것은 민간 전설이니 알아서 판단하세요. 용암 주변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도는 곳이어서 해마다 익사자가 나온답니다. 수영에 자신이 있더라도 용암 주변에서는 물놀이를 하지 마세요.
관광지 동쪽 끝부분쯤에서 강 건너를 보면 절벽 숲 속에 정자 하나가 수줍은 듯 숨어 있습니다. 시인 묵객들이 양강의 너른 들과 송림을 바라보며 시를 읊던 곳으로, 함벽정(涵碧亭)이라고 부릅니다. 아쉬운 것은 관광지에서 바로 건너갈 수 없어 눈으로만 즐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쁜 현수교를 놓든지 나룻배를 두어서 함벽정에 오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천태산 영국사(寧國寺)는 꼭 봐야...
자풍서당(資風書堂)은 조선 초기에 지은 서당으로, 처음에는 풍곡당(豊谷堂)이라 하였으나 광해군 6년(1614)에 정구(鄭逑)가 강학을 하면서 자풍서당이 되었습니다. 서당의 안마당에는 5층 석탑의 지붕돌이 쌓여있습니다.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떠받들 때 그 자리에 있던 풍곡사(豊谷寺)를 허물면서 탑의 기단석과 몸돌은 서당의 주춧돌 등으로 쓰고 지붕돌만 땅 속에 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붕돌의 잘생긴 모양을 보건데 기단석에 몸돌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국보급에 해당되는 신라 말의 귀중한 석탑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양산팔경의 하이라이트는 천태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영국사(寧國寺)입니다. 신라 때 창건된 절은 고려 문종(1046~1083)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大覺國師)가 크게 중창을 하고 국청사(國淸寺)라 이름 짓고 산 이름을 천태산으로 하였답니다. 그 후 공민왕이 피란 와서 ‘나라가 평안해지라’고 기도를 한 후 영국사로 바꾸었답니다. 요사이 대웅전을 보수하려고 건물을 들어내보니 땅 속에서 현 건물과 방향이 다른 기단과 초석, 깨진 기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영국사가 과거 큰 절로, 건물이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대웅전 앞에 서있는 3층탑도 대웅전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보물 제533호입니다. 그 외에도 보물 제534호인 원각국사비(圓覺國師碑), 보물 532호인 8각원당형부도(八角圓堂型浮屠), 보물 535호인 망탑(望塔)이 있어 영국사의 화려했던 과거를 말해줍니다.
영국사에서 제일 먼저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둘레가 11m에 달하여 국내에서 직경이 가장 굵다는 은행나무입니다. ‘국가의 큰 난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한 해 걸러 엄청난 양의 은행이 열린답니다. 노랗게 단풍색으로 변하는 가을이면 영국사의 상징으로 길손을 반깁니다.
김영택 화백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국가브랜드위원회 선정 한국의 대표작가.
한국펜화가협회 초대회장.
1945년 인천 출생
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93년 국제상표센터(International trademark Center)에서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 54인에게 수여하는 '디자인 엠베서더(Design Ambassador) 칭호를 받음.
1994년 제 1회 벨기에 비엔날레 초청 작가.
2000년 국제 로터리 3650지구 '총재월신'에 펜화기행 연재.
2002년에서 2008년까지 중앙일보 ‘김영택의 펜화기행’,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일보 ‘김영택의 펜화로 본 세계건축문화재’등 다양한 작품들을 연재.
2002년 통도사 주요 건축문화재 펜화 기록 작업.
2004년 인사동 학고재 첫 전시회 '펜화 기행 Ⅰ'전.
김영택 화백이 작품집 『펜화기행』을 출간했다(지식의숲).
경복궁·송광사·병산서원 등 전국의 문화유산 60여 점을 담았다.
· 관련 자료
· 충북 영동 비단강숲마을 양산팔경 : 행정자치부지정 정보화마을
· 충북 영동 비단강숲마을 양산팔경 : 행정자치부지정 정보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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