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와 피안을 잇다
스님이 쌓은 돌다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가 순천 선암사에 있습니다. 이름도 참 멋있습니다. ‘신선이 되는 다리’라는 뜻의 승선교(昇仙橋)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 선암사에 가서 도를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지요.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 생활이 궁핍해진 절에서는 스님이 목수가 되어 법당을 짓습니다. 직접 기와도 굽고, 단청과 불화도 그립니다. 쇠를 녹여 범종을 만드는 스님에 돌다리를 쌓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선암사 호암 스님이 숙종 39년(1713)에 세운 승선교는 잘 만든 돌다리로 보물 제400호입니다.
높이 7m, 길이 14m, 너비 3.5m로 무척 큽니다. 양쪽 기단을 천연 암반에 두고 훌륭한 솜씨로 쌓았기 때문에 폭우에 계곡물이 범람하여도 끄떡없습니다. 앞뒤의 잡석만 쓸려 내려갈 뿐 장대석으로 쌓은 홍예 틀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벌교 홍교도 기술을 전수받은 선암사 스님들의 작품입니다.
승선교를 제대로 보려면 계곡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사진 찍기 좋은 너럭바위에서 보면 다리 밑으로 보이는 강선루(降仙樓)와 승선교가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강선루는 작은 개울 위에 지었습니다. 왜 멀쩡한 자리를 두고 위태로운 자리에 지었을까요. 혹시 멋을 아는 스님이 그림과 같은 구도를 위하여 터를 잡은 것은 아닐까요.
2010.12.30
[펜화 기행] 승선교와 강선루
봄의 선암사(仙巖寺)는 갖가지 꽃이 만발하여 선경을 이룹니다. 특히 작고 흰 꽃들이 둥근 덩어리를 이루어 피는 불두화(佛頭花)의 꽃잎이 눈처럼 흩날릴 때면 설토화(雪吐花)라는 별칭이 더 좋아 보입니다.
선암사를 찾아 숲길로 오르면 깊은 계곡이 막아선 곳에 예쁜 무지개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돌아가면 이번엔 높이가 7m나 되는 큰 무지개 다리가 보입니다. 이 돌다리들을 상.하 승선교(昇仙橋)라 부르는데 큰 승선교 아래 계곡으로 내려서면 둥근 다리 아래로 강선루(降仙樓)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f가옵니다.
승선교는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쌓았는데, 홍수 때 계곡의 급류가 다리 위까지 넘쳐 홍예석(虹霓石) 위의 잡석이 다 떠내려가도 홍예만큼은 끄떡 없습니다. 치밀한 설계와 뛰어난 솜씨 때문입니다.
강선루는 계곡에 흘러드는 작은 냇물 위에 지은 2층 누각으로서 평지에 지어도 될 것을 계곡 사이에 어렵게 지은 이유는 이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구도를 연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부처가 되어 승천한다는 승선교를 넘어 다시 부처가 사바세계로 강림한다는 강선루를 거치고, 선암사 스님들이 아홉 번 덖어서 만든 칠불전선원차(七佛殿禪院茶)를 마시면 정말 신선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1.05.25
[김영택의 펜화로 보는 한국] 순천 선암사(28)
600년 매화가 반기는 ‘꽃천지’
선암사를 제대로 보시려면 봄에 찾아가야 합니다. 매화가 지고나면 불두화가 주렁주렁 달리고 모란, 철쭉, 목련, 동백, 벚꽃 등 온갖 꽃들로 절 마당은 온통 화원이 됩니다.
600살이 넘은 매화를 보셨습니까? 전남 순천 선암사(仙巖寺)에 600살이 넘었다는 매화가 있습니다. 보고 싶어서 3월 초부터 전화를 하였는데 “일주일만 기다려보세요”한 것이 한 달이 되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선암사보다 훨씬 더 북쪽에 있는 곳에서도 매화가 피는데 거기는 왜 늦느냐”니까 “늙은 매화라 그렇습니다”는 스님도 있고 “지대가 높아서 늦게 핍니다”는 스님도 계십니다.
4월 3일 선암사 종무소에 근무하는 보살이 “40%쯤 피었습니다”고 하기에 심야고속버스 편으로 달려갔습니다. 새벽 3시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5시30분 순천행 첫 버스를 타고 선암사에 도착하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이것저것 볼 것 없이 바로 원통전(圓通殿) 뒤로 한걸음에 달려가보니 600살이 넘었다는 매화가 70%쯤 피었습니다. 하루 만에 30%가 더 핀 셈이지요. ‘40%쯤 피었다’는 표현이 참 신선해보여서 계속 같은 방법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약간 피었다’거나 ‘조금 피었다’는 표현보다 훨씬 상황파악이 잘 되지요?
키가 5m를 훌쩍 넘어 보이는 고매(古梅)는 검고 굵은 몸통과 가지에 많은 꽃을 달고 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장관이었지요. 화가들이 고목에 핀 매화를 즐겨 그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검고 울퉁불퉁한 굵은 고목에서 힘차게 뻗어나간 가지에 핀 매화는 연륜과 품격과 절개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어린 매화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사랑으로 치면 풋사랑이 아니라 원숙한 사랑이지요.
고매에서 30m 쯤 떨어진 무우전(無憂殿) 옆길에는 200년 묵은 매화들이 두 줄로 늘어서 터널이 되었는데 백매(白梅)에 홍매(紅梅)가 섞여서 환상의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실 때쯤에는 매화가 만개되어 흰 꽃잎이 눈처럼 휘날릴 것입니다. 한번 보면 영원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펜화가는 흰 꽃잎이 눈처럼 깔린 선암사 매화 꽃길에 반해서 봄이면 상사병을 앓습니다.
선암사를 제대로 보시려면 봄에 가야 합니다. 매화가 지고나면 불두화가 주렁주렁 달리고 모란, 철쭉, 목련, 동백, 벚꽃 등 온갖 꽃들로 절 마당은 온통 화원이 됩니다. 많은 절을 보았지만 이렇게 꽃이 많은 절은 처음입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8)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선암사 서쪽에 비로암(毘盧庵)을 세웠고 신라 경문왕 원년(861)에 도선국사가 선암사 터에 초창을 한 역사가 1100년이 넘는 고찰입니다.
조계산 계곡을 따라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에는 두 개의 무지개다리가 있어 상•하 승선교(昇仙橋)라 부릅니다. 승선교는 긴 장대석을 암반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 다리로, 보물 제400호입니다.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쌓았다는데 튼튼하기 짝이 없어서 큰 홍수에 급류가 다리 위까지 넘쳐 홍예석 위의 잡석이 몽땅 떠내려가도 홍예석만큼은 끄떡없답니다.
옛날 절에서는 여러가지 기술을 자급자족하였습니다. 건축뿐만 아니라 단청, 불화, 인쇄기술에 범종을 만드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선암사에는 다리 만드는 기술이 있어 보성 벌교의 홍예교(보물 제304호)도 선암사 스님의 작품이랍니다.
뒤편엔 넓은 야생 차밭
큰 승선교 앞 계곡의 넓은 반석에 내려서면 반원형 다리 아래로 강선루(降仙樓)가 보입니다. 선암사에서 사진이 가장 멋있게 나오는 곳입니다. 강선루는 계곡으로 흘러드는 냇물에 장대석을 세운 위에 지은 누각입니다. 약간만 뒤로 물려지어도 될 것을 굳이 냇물 위에 어렵게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펜화를 그리다 문득 그림과 같은 아름다운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계곡 아래 반석에 내려가 승선교와 강선루를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강선루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면 일주문을 만나게 됩니다. 일주문 위로 바로 범종루가 나옵니다. 간격이 좁아서 사천왕문이나 금강문을 세우지 못하였나 봅니다. 범종루 앞에 ‘육조고사(六朝古寺)’라는 현판이 걸린 만세루(萬世樓)가 길게 시선을 가로막습니다. 만세루 옆을 돌아 오르면 대웅전 영역이 됩니다. 마당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는데 보물 제395호입니다.
선암사 건물의 특징 중 하나가 ㅁ자 건물이 4동이나 되고 담장을 쌓은 건물이 6채로서 무척 폐쇄적 느낌이 듭니다. 대웅전 좌우로 설선당(說禪堂)과 심검당(尋劍堂)이 ㅁ자 건물이고 천불전과 창파당(滄波堂)도 같은 형태입니다.
이러한 건물의 구조는 1954년 ‘불교개혁’이라며 조계종단이 태고종의 사찰을 접수할 때 선암사 스님들이 절을 지키는 데 효과적이었답니다. 처음에는 태고종 스님들이 몽땅 쫓겨난 적도 있으나 다시 밀고 들어와 조계종 스님은 심검당에, 선암사 스님들은 설법전에 살면서 다투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법적 소유권은 조계종단에 있으나 실제 거주는 태고종 스님이 하고 있어 입장료를 순천시에서 받아갑니다. 물론 그 돈은 선암사 보수 등에 쓰인답니다.
달마전 뜰에 4개의 돌확이 나란히 놓였는데 뒷산에서 흘러온 물이 나무 홈통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양이 무척 신비로워 보입니다. 품질 좋기로 소문난 선암사 칠전선원차를 달마전 수조의 물로 우려 마시면 최상의 맛이 될 것 같습니다.
선암사 뒤에는 넓은 야생 차밭이 있습니다. 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은 차나무에서 4월 말과 5월 초에 딴 어린 잎을 무쇠 솥에 덖어서 만들기 때문에 맛과 향이 일품입니다. 스님이 띄워준 매화차에 반해서 매화 몇 송이를 필름통에 넣어왔습니다. 가족 앞에서 찻잔에 하나씩 띄웠더니 온 방안에 매화향이 가득 차네요. 과학고에 다니는 아들이 “매화향에 취한다”고 시적인 표현을 하고, 한번도 차 맛에 대한 칭찬이 없던 집사람도 감탄을 합니다. 올 봄 선암사의 매화향에 취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그림ㆍ글ㆍ사진 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주간조선 1850호 2005.04.18
김영택 화백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국가브랜드위원회 선정 한국의 대표작가.
한국펜화가협회 초대회장.
1945년 인천 출생
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93년 국제상표센터(International trademark Center)에서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 54인에게 수여하는 '디자인 엠베서더(Design Ambassador) 칭호를 받음.
1994년 제 1회 벨기에 비엔날레 초청 작가.
2000년 국제 로터리 3650지구 '총재월신'에 펜화기행 연재.
2002년에서 2008년까지 중앙일보 ‘김영택의 펜화기행’,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일보 ‘김영택의 펜화로 본 세계건축문화재’등 다양한 작품들을 연재.
2002년 통도사 주요 건축문화재 펜화 기록 작업.
2004년 인사동 학고재 첫 전시회 '펜화 기행 Ⅰ'전.
김영택 화백이 작품집 『펜화기행』을 출간했다(지식의숲).
경복궁·송광사·병산서원 등 전국의 문화유산 60여 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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