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반드시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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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기행] 경남 양산 통도사 석조봉발





통도사 석조봉발

부처님 밥그릇 안엔 뭐가 들었을까

 불보사찰 통도사 용화전(龍華殿) 앞에 큰 돌그릇이 받침돌 위에 놓여 있습니다. 높이 3m에 뚜껑까지 덮여 있는 돌그릇을 석조봉발(石造奉鉢)이라 부르는데 보물 제471호입니다. 공식 명칭은 봉발탑(奉鉢塔)으로, 희귀한 불교문화재입니다. 봉발이란 스님이 밥을 얻으러 다닐 때 들고 다니는 그릇, 즉 발우(鉢盂)를 모셨다는 뜻입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출가 후 평생 동안 갖고 다닌 것은 헌옷 한 벌과 밥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였으니 세상을 뜨실 때 수제자에게 물려줄 것은 밥그릇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입적을 하기 전 제자 가섭존자에게 “내 발우를 보관하였다가 미륵불이 출현하면 물려주게” 하시며 발우를 맡기셨답니다. 그래서 석조발우가 미륵부처님을 모신 용화전 앞에 설치된 것입니다.

 이런 전통이 있어 큰스님이 입적할 때 발우를 받는 것을 제자로서 큰 영광으로 알았으나 요즈음에는 물려줄 재산이 없으면 제자 한 명 두기가 어렵답니다. 무소유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요.

 석조봉발은 사각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놓고, 팔각 중대석에는 마디를 조각하였습니다. 연잎을 조각한 상대석 위에 놓인 돌그릇에 큰 뚜껑을 덮어 놓았습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초창된 용화전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봅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발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무척 궁금하였습니다. 불상처럼 유물을 넣어 놓았을까요? 빈 그릇일까요? 아니면 속을 파내지 않은 통자 돌일까요? 통도사에 일 년 반을 살면서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김영택의 펜화로 보는 한국] (30)양산 통도사 일주문과 봉발탑

700년 전 세워진 ‘부처님의 종갓집’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고 쓴 편액은 대원군의 글씨입니다. 굵고 힘이 있어 대원군의 호방함이 보입니다. ‘국지대찰(國之大刹)’과 ‘불지종가(佛之宗家)’라는 주련은 조선조 말 최고의 명필이라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것입니다. 나라 안에서 제일 큰 절로, 불가의 종갓집이라는 뜻이지요. 

 건축 문화재를 펜화에 담기 위하여 전국의 사찰을 찾아 떠돈 지 12년이 넘었습니다. 사찰 중에는 규모가 작아도 가람의 배치와 주변이 아름다워서 그림 그리기 좋은 절이 있는가 하면 큰 절이면서도 그림 그릴 만한 구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는 참 아름다운 절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통도사 스님들이 예(藝)에 밝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스님도 여러 분 계시는데, 돌아가신 중광 스님도 통도사 출신입니다. 서예에 능한 스님도 많아서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개산대제에는 산중 스님들의 선서화(禪書畵) 전시가 열립니다. 주지인 현문 스님은 사진작품으로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고 서울 양재동에 있는 통도사 포교당인 구룡사 주지 정우 스님도 해외에서 사진전을 열 정도로 실력이 높습니다.


 통도사를 제대로 보려면 차를 산문(山門) 밖에 두고 차분하게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통도사의 깊은 맛을 속속들이 맛보실 수 있습니다. 차도와 보행로가 따로 있어 걷기도 좋습니다. 

 입구의 산문은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문으로, 대가람이 아니면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보행로를 10여분쯤 걸으면 나라 안에서 제일 큰 부도밭이 나옵니다. 이 부도밭 앞에 서 있는 크고 화려한 문은 총림문(叢林門)입니다.

 이쯤 되니 통도사에 처음 오시는 분은 어떤 문이 일주문(一柱門)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일주문은 총림문에서 100m쯤 더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 절에서 처음 만나는 문이 일주문입니다. 큰 기둥을 좌우 일직선으로 세웠기 때문에 일주문이라고 합니다. “왜 기둥이 하나가 아니냐”고 묻는 분도 있지요. 영어로는 ‘One Pillar Gate’라고 하는데 이 또한 웃기는 번역입니다.



 통도사 일주문은 700년 전 고려 충렬왕 31년(1305)에 세워진 건물로, 오래된 일주문 중에서는 드물게 큰 문입니다. 현 건물은 영조 46년(1770) 두섬(斗暹)대사가 중건한 것입니다. 

 보통 일주문이 기둥 2개로 출입구가 하나인 데 비하여 4개의 기둥으로 삼문 형태를 취했습니다. 궁궐이나 사당의 문이 삼문이지요. 자연석을 주춧돌로 하고 기둥의 하단을 돌의 모양에 맞추어 그랭이 기법으로 다듬어 튼튼하게 세웠습니다. 맛배지붕의 네 귀퉁이에 활주를 세워서 넓은 지붕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포형식의 화려한 공포는 이곳부터가 부처님의 집, 즉 용화세계임을 보여줍니다.



‘영취산’ 아닌 ‘영축산’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고 쓴 편액은 대원군의 글씨입니다. 굵고 힘이 있어 대원군의 호방함이 보입니다. ‘국지대찰(國之大刹)’과 ‘불지종가(佛之宗家)’라는 주련은 조선조 말 최고의 명필이라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것입니다. 나라 안에서 제일 큰 절로 불가의 종갓집이라는 뜻이지요.

 얼마 전 모 신문에 통도사 일주문의 현판에 ‘영축총림통도사’라고 쓰여 있다는 글을 내보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영취산’을 ‘영축산’으로 틀리게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축(鷲)’자가 옥편에는 ‘독수리 취’라고만 나오거든요. “당신이 보는 옥편은 어떤 것인지 밝히라”는 것은 양반이고, 욕에 가까운 글도 있었습니다. 펜화가의 이메일뿐 아니라 신문사에도 항의가 많아서 정정보도를 해야 하느냐고 묻더군요.

 전국의 산 이름에 ‘영취산’으로 표기된 것은 ‘영축산’의 오기입니다. 왜냐하면 ‘영축산’이란 부처님이 설법을 한 인도의 산 이름에서 유래한 불교지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영축총림’ ‘영축산’으로 부릅니다. 사찰 벽화를 뜻하는 탱화(幀畵)의 ‘幀’자는 ‘그림 족자 정’인데 ‘탱’으로 읽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불국토입니다. 이왕지사 불국토에 들어왔으니 불교에 대하여 조금은 알아봅시다. 불교의 근원은 윤회(輪廻)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신도 중에는 ‘남편 돈 잘 벌게 해주세요’ ‘자식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내 건강을 챙겨주세요’ 하는 기복 때문에 절에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에게 윤회에 대하여 물으면 “스님이 그런 게 있다고 하데요”라며 자신 없는 투로 대답을 합니다.

 하버드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폴 뮌젠(한국 법명 현각 스님)은 초등학교 시절 “신께서는 모든 어린이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데 왜 어떤 아이들은 불구로 태어나고, 어떤 아이들은 불치병을 안고 태어납니까? 도대체 그런 아이들에게 베푸는 신의 사랑이란 어떤 종류의 사랑입니까?”라고 선생님께 물었다가 된통 혼이 납니다. 이런 의문은 한국의 숭산 스님을 만나 불교를 배우면서 해결됩니다.



 ‘인간은 전생의 업(業) 때문에 현생이 있고, 현생에서 쌓은 업 때문에 내생이 있다’는 것이 불교의 윤회사상입니다. 착한 사람이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것은 전생에 돈을 함부로 썼든지 남의 돈을 착취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돈을 흥청망청 쓰고 못된 짓만 하는 인간은 전생의 복으로 잘 살지만 다음 생에서는 그 반대로 살게 된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자신의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재 사는 상태를 보면 되고 다음 생의 모습은 현생에서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조폭의 행동대장을 하던 이에게 윤회가 있다고 하니까 펄펄 뛰며 부정을 하더군요. 다음 생에 되받을 생각을 하면 끔찍하겠지요.

 신의 세계는 불공평한 법이 없이 완벽해야 되겠지요. 윤회는 뿌린 대로 거두게 하는, 완벽한 신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지극하게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지금의 인생은 많은 인생 시리즈 중 한 막에 불과하며 우리는 이생에서 내생의 환생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하며 영혼의 윤회와 불멸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 윤회는 왜 할까요. 영적인 진보를 위해서랍니다. 현생에서의 지식이나 명예, 돈은 다음 생애에 이어지지 않습니다만 수행공덕은 그대로 축적이 된답니다. 이 세상은 불성(佛性)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부처랍니다. 다만 모를 뿐이지요. 그래서 영혼의 진보와 업장의 소멸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군요. 즉 깨달으면 모두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통도사에서 유심히 볼 것 중에 하나가 봉발탑(封鉢塔)입니다.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석조물로 보물 제471호입니다. 공민왕 18년(1369)에 처음 지어진 용화전(龍華殿) 앞에 석조 발우(鉢盂;스님의 밥그릇)를 올려놓은 작은 탑입니다. 불가에서는 큰 스님이 죽기 전에 수제자에게 가사(袈裟)와 발우를 주어 법통을 잇게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을 하실 때 제자인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가사와 발우를 보관하였다가 먼 훗날 나타날 미륵불에게 주도록 하였답니다. 그래서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 앞에 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뚜껑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돌로 된 발우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그림ㆍ글ㆍ사진 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주간조선 [1852호] 2005.05.02






김영택 화백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역임.
국가브랜드위원회 선정 한국의 대표작가.
한국펜화가협회 초대회장.

1945년 인천 출생
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93년 국제상표센터(International trademark Center)에서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이너 54인에게 수여하는 '디자인 엠베서더(Design Ambassador) 칭호를 받음.

1994년 제 1회 벨기에 비엔날레 초청 작가.

2000년 국제 로터리 3650지구 '총재월신'에 펜화기행 연재.

2002년에서 2008년까지 중앙일보 ‘김영택의 펜화기행’,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일보 ‘김영택의 펜화로 본 세계건축문화재’등 다양한 작품들을 연재.

2002년 통도사 주요 건축문화재 펜화 기록 작업.

2004년 인사동 학고재 첫 전시회 '펜화 기행 Ⅰ'전.


김영택 화백이 작품집 『펜화기행』을 출간했다(지식의숲).

경복궁·송광사·병산서원 등 전국의 문화유산 60여 점을 담았다.





· 관련 자료
· 봉발탑(通度寺 奉鉢塔) - 영축총림 통도사





·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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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
KTX 울산 (통도사역)
버스이용
13번 시내버스를 이용 하시면 됩니다. (버스시간표는 오른쪽 위의 버스시간표 보기를 눌러보세요.) 통도사까지 소요 시간은 30분정도 입니다.
통도사에서 내려서 택시 이용시 기본요금 3,500원정도이고, 통도사는 보행로가 아주 잘 되어있어서 걸어오셔도 30분정도 소요되며 걸어 오시는 내내 은은한 솔향과 함께 하실수 있습니다.
택시이용
울산(통도사)역에서 택시 이용시 소요 시간은 20분정도이며 택시요금은 25,000원정도입니다.

대중교통
부산에서 출발
동부시외버스터미널(노포동 지하철역, 경남버스)에서 신평(통도사)행 승차.
(시간 : 06:30~20:40 / 매 20분 간격) → 통도사 하차.

경주에서 출발
고속버스터미널 : 부산행 천일일반고속 통도사 인터체인지 하차 → 통도사 하차.

울산에서 출발
공업탑로타리(경남버스) 20분 간격 이용.


승용차편
경부고속버스 통도사 IC 이용.


항공편
서울출발 행
서울출발 → 부산 → 통도사(버스로 1시간-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 / 서울출발 → 울산(1시간).

▷ 통도사 (버스로 1시간) 열차편
서울출발 → 부산 → 통도사(버스로 40분) / 서울출발 → 경주 → 통도사 (버스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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